여행, 걷기

‘해파랑길’을 걷는 친구에게

송담(松潭) 2019. 5. 4. 23:45

 

해파랑길을 걷는 친구에게

 

 

 

해파랑길 제1코스 부산 오륙도에서

해운대 백사장 끝에 있는 미포항까지 17.7 Km 마치고 사진을 보내왔다.

(5월 3일)

 

 

 내 친구 상선약수 박형하가 산티아고 순례길 800km(39 40)의 대장정과 히말리아 트래킹에 이어 부산에서 고성까지 770km ‘해파랑길 대장정에 올랐다.나에겐 참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단련과 성찰의 삶을 실행하고 있는 친구에게 무한한 경의(敬意)를 표한다.

 

 친구의 삶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프랑스)의 말대로 무의미한 삶에 대한 적극적인 반항이요, 남들이 사는 대로 따라서 살지 않고 위대한 의식의 순간을 경험하고자 하는 도전과 극복의 길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땅만 보며 무작정 걸을 때나, 따가운 햇볕에 온몸이 젖어 녹초가 될 때나, 밤이 되어 물집 잡힌 발바닥을 볼 때 그는 무엇을 위해 이 고난의 길을 가는가 회의(懷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맞이한 저 끝없이 푸른 동해바다. 점하나 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무량한 감개(感慨), 하늘과 닿은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보며 접하는 아우라, 그 탄성의 시간에 그는 조용히 눈물지을 것인가. 소낙비 퍼붓듯 통곡할 것인가.

 

 친구가 왜 그렇게 걷고 또 걷는지 작가 최태성이 쓴 '역사의 쓸모'에 언급된 다산 정약용의 생을 통해 알 수 있다. 18년간 귀양살이를 하면서 복숭아뼈가 물러지도록 500권의 책을 쓴 그는 폐족이 된 자식들에게 편지를 통해 선비의 기상을 유지하는 길을 끊임없이 알려주었다. 또한 죄인이 되었다고,  폐족이 되었다고 자포자기 않았고 자신이 죄인으로서 형조에 기록된 몇 줄짜리 글로 평가받는 것을 거부했다. 자신의 글을 남겨 후세와 역사의 평가를 받으려 했고 그 결과 다산은 죽었어도 영원히 살아있다. 친구는 오늘도 끝없이 책을 읽고, 시간 나면 걷고 또 걷는다. 자신을 한탄하며 힘든 세월을 그냥 홀려 보내지 않고 책을 쓰며 투혼했던 다산처럼.

 

 친구는 지구에 수많은 발자국을 남겼다. 비록 땅위에 흔적은 새겨지지 않지만 땅을 밟는 순간마다 발바닥을 통해 전달된 자장(磁場)과 정기(精氣)가 몸속에 쌓여 그 힘으로 고난의 인생길을 헤쳐가고 있다. 사마천이 고통 속에서 불멸의사기를 썼듯, 다산이 그리하였듯, 친구 역시 스스로 고통을 불러 자신의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단련과 카타르시스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창조해 나가고 있는 친구의 위대한 발길을 축원한다.

 

 홀로 한적한 이 밤, 지금 친구는 내일 동해바다에 찬란히 떠오를 아침 해를 그리며 쉬이 잠 못 이룰 터. 부디 깊은 꿀잠에 빠져 눈부신 내일의 땅을 다시 걷기를...

 

 (2019.5.4 밤에 )

 

< 친구가 보낸 답장 >

 

 친구가 해파랑길의 장도를 빌어주는 글을 써서 보내주었습니다. 읽는 내내 친구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구나 하면서 우정의 깊이를 느끼게 하였습니다.

 

 내가 걸었던 산티아고 800Km는 내게 남은 인생에서 다가오는 노란화살표는 몇 개나 남았고 어떤 색깔과 모양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서 걸었습니다.

 

 히말라야 푼힐 전망대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은 풍요의 여신과 그의 요정들이 전해주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해파랑길의 독보는 나의 내면에 숨어 있는 진정한 자아를 찾고 싶어서 시작한 탐구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들은

 

 욕망과 자제를

 탐욕과 절제를

 무시와 배려를

 자만과 겸손을

 나와 자연을

 신체와 정신의 실체를 열악한 환경에서 체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서영은 같은 신앙심이 부족하고 정철 같은 천석고황이 들지 않았고 톨스토이 같은 인생에 대한 고뇌가 부족한 탓인지 나만의 노란화살표와 인생의 의미 그리고 내면의 자아를 대면하지 못하고 지금도 그 길에서 허둥대고 있습니다.

 

 주:

 안나푸르나는 네팔어로 풍요의 여신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서영은 : 노란화살방향으로 걸었다의 저자.

 

 

 

 

 



 

 

 (2019.5.4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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