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걷기

해파랑길에서 온 편지

송담(松潭) 2019. 11. 25. 06:07

 

해파랑길에서 온 편지

 

 

 

 

 여행은 3요소로 짜여 있다고 합니다. 떠남과 만남과 돌아옴이 그것입니다. 이번에 떠나는 길은 가본 적이 없고 동행 없이 걷는 길입니다. 떠남은 나를 둘러싼 철옹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쥐고 펴지 않는,

 있는 것을 버리지 못하는,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철옹성이지요.

 

 집을 떠나서 먼저 만나는 것은 길입니다.

 길은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돌아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노년의 삶은 외부 지향보다는 내부성찰이 올바른 길이 아니겠는가 하는 깨달음의 만남입니다.

 

 또한 저는 망망한 동해바다의 끝없는 포말의 생성과 소멸을 걷는 내내 목격 하였습니다. 그 포말은 지구촌의 개개 인간일 수도 있고 개인이 겪는 삶의 희로애락일 수도 있겠다는 발견이었습니다.

 

 이러한 만남과 발견으로 무장된 여행의 돌아옴은 철옹성을 유리성으로 바꾸는 마법같은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의 끝자락에서 나의 내면은 꺼진 줄 알았던 심화의 재가 다시 기름이 되어 불씨가 들불처럼 살아나고 있습니다.

 

 

 

 

벗님들의 염려 덕분으로 118일 해파랑길 17코스 포항 송도해변을 출발해 111934코스 강릉의 옥계시장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제가 출발할 때 예상했던 일정과 코스대로 해파랑길 2차 원정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벗님들의 응원과 관심에 먼저 문자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박형하 (2019.11.18)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 길에서 찍은 인물 사진이 없고

철저히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며 걷는다는 친구.

 

쓰다 가즈미는 그의 저서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성공한다에서

고독을 두 가지로 분류하고 사회와의 관계성이 단절되어

힘들고 어둡고 외로운 소극적 고독을 론리니스(loneliness)’,

 

삶에 빛과 자신감을 부여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적극적인 고독을 솔리튜드(solitude)’라 했습니다.

 

솔리튜드는 심신을 재생시키기 위해

본연의 자기다움을 찾고자 하는 긍정적인 고독입니다.

친구는 솔리튜드(solitude)의 시간을 걷고 있습니다.

 - 김보일 / ‘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중에서 인용 -

 

 

그림자가 화석이 된 기이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래서 빛의 순간을 잡으면 영원하다.

고독한 친구가 홀로 즐기는 놀이는 작품(作品)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감흥이고 환희다.

 

서영은의 말을 인용했다는 친구의 말대로

빛의 은유이며 희롱이다.’

 

 

 

또 한 컷의 그림자 예술이다.

 

모자 쓴 자의 침묵은 짙고, 등에 맨 배낭은 헐겁다.

지팡이는 고단하나 방향성이 있고 그 끝은 육중하다.

고독한  그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해질 무렵,

동해의 나그네는 다리가 길어서 슬프다.

 

 

포항 송도 해변 자유의 여신상.
포항제철소를 배경으로 리얼한 조각 작품이다.

 

 

< 답장 >

 

 친구가 해파랑길에서 편지를 보낸 어제 밤 저는  술자리에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차분히 편지를 읽어보니 친구의 걷기여행은 단순한 신체단련이나 호연지기를 넘어 선 삶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었습니다.

 

 떠남과 만남 그리고 돌아옴. 떠남은 자유를 향한 무한한 동경이나 회피와 일탈이 아니고, 만남은 현지인과의 만남이 아닌 오롯이 자신과의 만남이요. 돌아옴은 포말 같은 허무와 빈손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포말의 생성과 사라짐을 지켜보며 무수한 인간사의 다툼과 소용돌이, 몸부림도 한 순간 포말이 되어 사라지는 공()이겠지만 그 생성과 소멸의 반복을 통해 우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원리와 영원성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여행의 돌아옴이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고 말았다고 할 수 있지만 세속인인 우리가 어찌 쉬이 마음을 정화(淨化)하고 굴곡 없는 평로(平路)만을 걸을 수 있겠습니까. 교에서 말하는 돈오점수(頓悟漸修)에서 깨닫는 것은 목표와 방향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수행은 올바른 깨달음 후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성인이나 수도자가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우리 같은 범부(凡夫)들은 순서를 바꿔 수행이 쌓여(漸修) 깨달음에 이르게(頓悟) 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친구의 그동안 고난의 길은 깨달음을 향한 점수(漸修)의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이 해파랑길 2차 마지막 날이군요. 친구의 두 다리는 영혼의 보금자리인 튼튼한 집이 되어주었고 견고한 집으로부터 나온 몸의 동력은 인고(忍苦)의 시간을 지탱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친구가 저는 부럽습니다. ! 자랑스러운 나의 친구여!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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