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

송담(松潭) 2019. 6. 3. 15:06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

 

 

사진출처 : 한국일보 2018.4.16

 

 

 여러 해 전에 자전거를 타고 산간마을과 농촌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노인들을 자주 만났다. 마을들은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을 행정용어로는 공가(空家)라고 한다. 공가 마당에 맨드라미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고 지붕에 버섯이 박혀 있었다. 마을 골목길에는 시멘트가 굳기 전에 밟고 돌아다닌 개들의 발자국이 화석처럼 찍혀있었다. 발자국들의 방향이 교차했고 크기가 제가끔인 걸로 봐서 마을에 개들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마을을 노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국토는 아무리 외지고 땅값이 싸더라도 거기에 사람이 살아있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사람의 마을일 터인데, 이 노인들의 자연수명이 끝나면 국토는 벌레 소리 가득한 풀밭이 되는가 싶었다. 마을들은 위태로운 마지막처럼 보였다.

 

 나보다 5~10살 정도 연상인 세대에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노인들이 많았다. 남성보다도 여성 노인들의 문맹이 더욱 심했다. 조혼, 육아, 남녀차별, 가사노동, 생산노동, 시집살이처럼 여성의 생애에 유습된 억압이 그 배경이었다.

 

 여자가 글을 배우면 친정에 편지질해서 시댁을 흉보고 고자질한다는 이유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연도 있었다. 식당 메뉴나 간판, 면사무소의 고지문, 동네 버스 정류장의 이름도 읽지 못했다. 기록된 역사가 없는 시대를 선사시대라고 한다는데, 이 문맹 노인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전쟁, 이산, 이농, 기아, 가난, 억압의 시대고(時代苦)를 개인의 삶으로 치러냈고 한 시대 전체의 무늬가 나이테처럼 몸에 쟁여져 있고 옹이로 박혀 있지만, 그들의 생애는 당대사에 편입되지 못하고 선사의 지층 밑바닥에 매몰되어 있었다.

 

 노인들은 늙어서도 여전히 생산노동과 가사노동을 감당해내고 있었다. 산간농촌의 노인들은 뭐든지 다 조금씩 기르고 있었다. 자투리땅에 콩, , , 수수, , 배추, 고추, 호박, 오이, 마늘. 대파, 양파를 여기저기 조금씩 심어서 길렀고, , , 오리, 토끼를 먹였다. 이러니 한평생 눈코 뜰 새 없다. 이렇게 먹고사는 방식을 행정용어로는 산간형 복합영농이라고 하는데,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이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공교육이고 사교육이고가 아예 없었지만 내가 만난 문맹 노인들은 대부분이 스스로를 잘 교육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말을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았고, 말을 할 때 미리 준비한 전략이 없었다.

 

 그들은 곡식이건 채소건 짐승이건 사람의 자식이건, 자라는 것들을 먹이고 가꾸고 거두어서 키울 줄 알았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아름답고 정당함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멀리서 온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그들의 앎은 지()가 아니라 득()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그 앎은 한 생애를 통해서 실천되고 있었다.

 

 지난 수년 동안 전국의 여러 지방자치잔체들과 민간인들이 고령의 문맹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서 아름다운 성과를 거두어왔다. 할매는 할머니의 사투리라고 국어사전에 쓰여 있는데, 산간마을에 가보면 '할매'는 혈연관계를 나타내기보다는 고령 여성 전체에 대한 범칭이거나 애정처럼 쓰이고 있다. 80살에 가까워서 한글을 깨친 할매들의 글을 모은 시집, 일기들이 책으로 출판되고 있다. 한글을 모르는 노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은 정부가 시행한 노인정책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으로 보인다.

 

 아침에 이러나서 밭에 가 보면

 꽃치 피고 파란 잎이 팔랑팔랑 하는데

 저도 나를 보고 나도 저를 보고

 얼마나 사랑서럼고 감사한지 몰라요

                                  송문자(칠곡)

 

 할매들은 작물을 통해 자연과 깊이 공감하고 있다. 감자, 푸성귀, 벼는 소출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작물들은 할매들의 마음속에 사랑과 기쁨의 자리를 만들어준다. 여러 할매들이 가난과 어린 시절의 고난을 글로 써놓았는데, 할매들은 지나간 고난의 힘으로 닥쳐올 고난을 감당하고 고난 속에서 푸성귀를 키우고 자식을 기른다.

 

 사남매 길으면서 병들어 호열자가

 들었는데 자식들이 눈에 헛것이 보여서

 

 "어머니 저 나무에 고기가 고기가 달렸습니다

 저 고기를 주세요."

 그래서 외상으로 쌀을 사서 죽을 쒀 주었다.

 (...)

 그때 바라는 거슨 자식을

 배부르게 먹이는 거였다.

                                        유순희(칠곡)

 

 

 가수가 되기 위해 서울로 가려고 했는대

 내가 못간 이유는 신발이 업서서 였다.

 집신을 신고 서울로 갈 수가 업섰다.

 그래서 가수가 못대다.

 나안테 검정 고무신만 있었어도 서울로 가서

 이미자처럼 멋진 가수가 대었을건대 참 아쉽다.

                                              도쌍연(칠곡)

 

 

 순천 할머니들의 글에는 1948년 여수 순천 1019사건의 기억들이 등장한다. 국군, 경찰, 반란군들이 번갈아 마을에 들어와서 아버지, 오빠, 삼촌들을 총으로 쏴죽이는 참상을 할머니들은 소녀 시절에 목격했다.

 

 안안심 할머니(순천)의 오빠는 반란군에 끌려갔다가 돌아와서 국군에 자수했더니 빨갱이로 몰려서 총살당했다. 김명남 할머니(순천)의 아버지는 학교로 모이라는 말을 듣고 갔다가 반란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김영분 할머니(순천)는 열한 살 때 6·25를 당해 피난길에 나섰는데, "죽은 동생을 어디다 두고 갈 수가 없어서 하루종일 업고" 다녔다.

 

 양순례 할머니(순천)는 시집가서 첫아기를 낳았는데, 시어머니도 같은 해에 아기를 낳았다. 시어머니의 젖이 안 나와서 양순례 할머니는 애기 시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쌍둥이처럼 두 아이를 길렀다. 애기 시누이가 울면 시어머니가 야단을 쳐서 물을 길으러 갈 때도 애기 시누이를 업고 다녔다. 얼마 후에 시아버지가 바람피워서 낳은 아기를 데리고 와서 애기 시동생까지 함께 돌봐주었다고 하니, 기막히다.

 

 기막힌 이야기는 한이 없다. 시댁에 가서 농사일 도와주고 돌아왔더니 남편은 동네 술집 여자와 바람이 나 있었고 또 어떤 아버지는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웬 여자를 데리고 와서 엄마랑 셋이서 한방에서 자고 아침에 밥상을 차려 바치게 했다고 하니, 기막히고 기막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매들의 감성은 가난과 억압에 매몰되지 않는다. 인간과 생활과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몸의 언어로 표현해낼 때, 할매들의 글은 발랄하다.

 

 눈이 사뿐사뿐 오네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

 사뿐사뿐 걸어오네

                                김정순(곡성)

 

 

 딸이 가다 차를 세운다

 야야 와그래 차 세우노

 엄마 요앞에 더디 걷는

 할매보이 엄마 생각이 나네

 우리 엄마도 저래 걸어가겠지 싶어서

 빵빵 거리도 못 하고

 딸이 그 말을 하이

 내 눈에 물이나네

                                강금연(칠곡)

 

 

 나는 할매들의 글을 읽으면서, 고난에 찬 한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의 생애와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던 그들의 작은 몸을 생각했다. 할매들은 그 몸을 시대의 밑바닥에 갈면서 살아냈다. 이념은 야만과 억압을 풍속으로 만들어서 개인을 보편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할매들의 글은 글 짓는 자의 글이 아니고 책 읽는 자의 글이 아니다. 할매들의 글은 생활이고 몸이다. 할매들이 한글을 깨쳐서 겪은 일들을 기록함으로써 할매들의 생애는 역사 속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할매들은 감추거나 꾸미지 않는다. 할매들의 글을 읽으면서, 한 문명 전체가 여성의 생명에 가한 야만적 박해와 차별을 성찰하는 일은 참혹하다. 그리고 그 야만 속에서도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존해온 할매들의 생애 앞에서 나는 경건함을 느낀다.

 

 할매의 책들은 단순히 '문맹의 할머니들이 80살 무렵에 한글을 깨쳤다'는 식의 뉴스거리가 아니다. 이 책들은 시대와 역사,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해서 근본적인 반성의 자료를 제공한다. 그 자료는 곧 할매들의 생애이다.

 

 김훈 / ‘연필로 쓰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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