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자이언트

송담(松潭) 2019. 2. 20. 15:54

 

자이언트

 

 

 

 

자이언트1957년쯤 한국에 상영된 미국영화 제목이다. 주연 배우는 그 유명한 록 허드슨’, ‘엘리자베스 테일러그리고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신인 배우 제임스 딘이었다. 얼마 후에 요절한 제임스 딘은 많은 영화 애호가들을 안타깝게 했다. 영화 줄거리는 광활한 서부 텍사스 목장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남자 주인공 록 허드슨은 그 목장 주인이었던 누나가 죽자 막대한 목장 상속자가 된다. 그런데 주인의 유언으로 많은 하녀와 목동들에게 각각 얼마씩 땅을 나누어 주었다. 새 목장의 주인이 된 록 허드슨은 하녀들과 목동들에게 땅값을 치르고 땅을 모두 회수했다. 하지만 목동이었던 제임스 딘만은 새 주인의 요청을 거절하고 자기가 받은 땅의 주인이 됐다. 얼마 후에 유전 개발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그 땅에도 유전이 개발됐다. 그리하여 제임스 딘은 큰 부를 얻게 됐고, 지방의 명사가 됐다. 나는 특히 이 영화 중에서 제임스 딘이 주인의 요청을 거절하고 밖으로 나가 망루로 올라가서 자기 소유가 된 넓은 땅을 바라보면서 감격하던 모습. 자기 소유 땅을 확인하며 저 텍사스라는 주제곡의 은은한 멜로디에 맞춰 경계선을 따라 뛰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며 감격한 것은 나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195310, 6.25 전쟁 중에 부모를 잃었다. 학업도 중학교 3학년을 끝으로 중단되고 재산도 모두 없어졌다. 의지할 곳 없이 외돌토리가 된 나는 하는 수없이 전라남도 신안군 작은 섬에 있는 큰아버지 집으로 찾아갔다. 그 섬에는 우체국도, 병원도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나룻배를 타고 면사무소가 있는 큰 섬으로 가야 했다. 조금 센 바람만 불어도 배가 움직이질 못해 발이 묶였다. 외부에 큰 섬으로 둘러싸여 있는 어항도 없고, 농토도 조금밖에 없는 가난한 섬이었다. 큰아버지 집에 양자로 가 있던 큰형님도 징용되어 가고 당시 큰집에는 환갑이 된 큰아버지가 유일한 농사꾼이었다. 내가 가니 측은 해하면서도 새 일꾼이 생긴 것에 은근히 반기는 눈치였다. 보름쯤 지나자 우선 땔나무 하는 일부터 시켰다. 나는 지게질이나 땔나무 하는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몸도 튼튼한 편이 아니어서 나무하는 일이 무척 서툴고 힘들었다. 또래들은 하루에 오전, 오후 두 번씩이나 땔나무를 해오는데, 나는 오후 3시쯤 돼서야 한 짐도 채 못하고 돌아오곤 했다. 큰아버지는 한겨울 농한기에도 갖가지 일을 시키셨다. 그러면서도 내 서툰 일을 항시 못마땅해 하셨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자 지게로 퇴비를 보리밭으로 날라 깔아주기 시작했다. 작은 고개 너머에 있는 보리밭까지 퇴비를 나르는 일은 큰 고역이었다. 음력 이월이 지니면 논갈이를 시작했다. 가끔 이웃 큰 섬에 사는 큰아버지의 외손자가 왔다. 나보다 두 살이나 아래지만 모든 농사일도, 쟁기질도 썩 잘했다. 그때부터 큰아버지는 기대가 무너지셨는지 구박이 심해졌고 밥만 축낸다고 하시면서 음식 차별까지 시작됐다.

 

 음력 삼월 초면 따뜻한 남쪽 섬에는 봄이 시작된다. 봄이 되자 동네 앞바다에 제방을 쌓아 바닷물을 막고 염전 만드는 공사가 시작된다고 했다. 공사장 주변 야산에 염전 공사를 위한 여러 사람의 측량사 기술자들이 묶는 임시 숙소가 마련됐다. 나는 큰아버지 집에 더 견딜 수가 없어 그 숙소에 찾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슨 일이라도 시켜달라고 주인에게 통사정했다. 주인은 내 딱한 사정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일꾼들 밥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시켜만 주면 잘하겠다고 했더니 거기에서 주인과 함께 먹고 자면서 밥하는 일을 하도록 해 줬다. 처음에는 양은 솥에 밥 짓기가 어려웠다. 까닥하면 밑에는 타고 위에는 생쌀로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 물과 불을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밥을 잘 짓게 되었다. 얼마 후에 공사가 시작됐다. 동네에서 나온 인부들이 측량사와 기술자의 지시에 따라 지게로 흙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나는 오전, 오후에 나가 인부를 점검하고 다음 날 새벽이면 일찍 일어나 주인이 일꾼들의 전표 작성하는 일을 도왔다. 전심전력을 다 했다. 주인은 무척 부지런했으며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나도 주인이 깨우기 전에 주인을 따라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주인이 한 번도 나를 일부러 깨워본 적이 없었다. 나는 건강도 좋아졌고 주인의 신임도 두터워졌다. 중요한 물건을 두는 곳의 자물통과 열쇠는 나에게 맡겼다. 언제부턴가 나는 주인이 있는 사람이 돼 있었다. 어쩌다 마을로 나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너의 주인 잘 있느냐?", "너의 주인 목포 갔다 왔느냐?"라고들 물었다. 어떤 날은 목포 주인댁에서 가져온 빈 반찬 통을 지게에 지고 가면 너의 주인 목포에 가나 보구나하고 묻곤 했다. 그러던 중 염전 축조가 끝나자 측량사들, 기술자들도 떠나고 내가 밥할 일이 없어졌다. 뒷산에 혼자 올라가 먼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 붉은 불기둥 속으로 멀리 지나가는 큰 배들을 보며 언젠가는 나도 저 배들이 가는 곳으로 가고 싶은 꿈을 꿨다. 다음 해에 염전 사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의지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서울 생활은 무척 힘들었다. 밥을 굶는 일도 있었다. 노동판에서 사정하여 미장공 조수 노릇도 했다. 한여름에 얼음과자 통을 메고 골목을 돌며 얼음과자 장사도 했다. 더위가 가시자 다시 노동판에 가서 일했다. 겨울이 닥쳐오자 노동일도 없어졌다. 식당에서 심부름 일을 하고 있던 동생을 데려와 북아현동 산 위에 있는 무허가 집 방 한 칸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다. 그리고 미군이 머물고 있던 조선호텔 앞 북창동 거리에서 노점을 시작했다. 7개월쯤 지나서 서울의 뒷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이동식 점포를 마련했다. 군대에서 전선을 감았던 통을 반으로 쪼개어 두 바퀴를 만들고 그 위에 판자를 얹었다. 속칭 딸딸이 구루마였다. 낮에는 앞의 위, 아래 문을 열어 각종 잡화를 진열하여 놓고 장사를 했다. 밤에는 물건을 정리하여 안에 다 넣고 위, 아래 문을 닫아 잠그고 밑에는 겨우 기어 들어가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그 속에서 잠을 잤다. 낮에는 딸딸이 수레를 끌고 무교동 인도에서 장사를 하고 밤에는 지금의 교보빌딩 대각선 방향, 지금은 없어진 국제극장 뒷골목에 세워 놓고 잠을 잤다.

 

 그때 국제극장에서 영화 자이언트를 상영했다. 나는 중학생일 때도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낮에 동생에게 점포를 맡겨 놓고 그 영화를 두 번이나 관람했다. 그리고 밤이면 점포 문을 닫고 잠잘 수 있는 뒷골목으로 밀고 가면서 나는 이제 주인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비록 이동식 딸딸이 수레에 얹은 판자 점포이지만 내가 당당한 주인이라는 자부심과 그 뿌듯한 환희에 젖어 제임스 딘이 자기 땅을 확인하며 가볍게 달리던 모습을 흉내 내어 나도 가볍게 어깨를 실룩거리며 주제가인 저 텍사스를 흥얼거렸다.

 

 나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주제가의 가사와 멜로디를 잊지 않고 어쩌다 가끔은 나 혼자 가볍게 어깨를 흔들며 조용한 소리로 불러본다. 끝없이 넓은 이 땅. 살기 좋은 곳. 젊은 가슴 뛰게 하는 자유의 천지. 오늘도 밝은 해가 나를 부른다. 정열의 텍사스. 아름다운 텍사스. 내 사랑하는 텍사스.

 

 황민재 / ‘키움 수필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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