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자세
지 교 헌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조직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으며 그 조직의 관행이나 규정이나 정관(定款)에 따라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며 때로는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소속된 조직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그치지 않고 그 조직의 간부나 최고의 지도자로 활동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조직은 하나의 가정이나 시민으로 구성될 수도 있고 교육기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사제간(師弟間)의 조직으로 구성될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누구든지 크던 작던 간에 어떤 조직의 구성원인 동시에 지도자의 위치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서로 다른 성품(性品)을 타고 났을 뿐만 아니라 성장배경이나 학벌이나 판단력이나 가치관에 따라 서로 다른 인성(人性)과 행동을 나타내기 쉬우므로 그 소속 집단이나 조직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빚기도 쉽다. 이 때 그 조직의 책임자는 그러한 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하고 인화(人和)를 조성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조직이 분열하거나 와해되기도 한다.
어떤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을 일컬어 흔히 지도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지도자가 누구이며 어떠한 인물이냐에 따라 여러 가지 리더십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도자의 자질이나 유형은 지도자상(指導者像)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SNS에서 소개하는 리더십은 여러 가지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지도자(똑부형) · 똑똑하면서 게으른 지도자(똑게형) · 멍청하지만 부지런한 지도자(멍부형) · 멍청하면서 게으른 지도자(멍게형) 등으로 나누는가하면 자유방임형 지도자 · 카리스마적 지도자 · 민주적 지도자 · 거래적 지도자 · 변혁적 지도자 · 서번트지도자 · 진성지도자 등을 포함하여 수많은 유형의 지도자상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체로 보면 전근대사회에서는 카리스마(Charisma)적 지도자가 돋보였지만 현대사회에서는 합리적이고 민주적 지도자가 돋보이는 경향이 강하다.
나는 평생을 교육과 연구기관에서만 근무하였고 학생지도가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따금 학생들에게 과연 어떤 교육자의 모습이나 지도자상을 보이고 그들을 대하여 왔는지 회고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내가 특별히 나의 리더십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반성하게 된 것은 대학의 산악반(山岳班) 지도교수를 맡았을 때였다. 나는 그 어느 해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남녀학생 10여 명을 인솔하여 지리산(智異山) 등반을 떠났다. 충북선 청주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이튿날 아침에 전남 순천의 구례구(求禮口)역에 도착하여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구례(求禮)의 화엄사(華嚴寺)를 거쳐 노고단(老姑壇)으로 향하였다. -이곳엔 벌써 오래전부터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가 개통되어 있지만 1970년대 초에 해당하는 당시는 겨우 공사를 착공하는 단계에 있었다.- 등산로는 겨우 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좁고 꼬불꼬불한 길이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하나의 남학생이 기력을 잃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가 가지고 나선 기타가 그를 쉽사리 지치게 하였던 것 같았다. 수통을 열어 물을 마시고 한참이나 쉬어서 여러 사람의 부축을 받고 겨우겨우 노고단에 도착하여 하루를 캠핑하고 나서 이튿날은 임걸령(林傑嶺)을 거쳐 쌍계사(雙溪寺)로 향하였다. 멀리 가까이 바라보이는 시루봉과 토끼봉과 반야봉(般若峰)의 자태는 참으로 신비스럽고 우거진 삼림과 계곡은 너무나 너그럽고 향기롭고 포근하였다. 그러나 몇 시간을 걷다 보니 길을 잘못 들고 해는 넘어가고 있는데 또 하나의 학생이 주저앉는 것이었다. 캠핑할 지형도 마땅치 않은 데 식수를 구하는 것도 곤란하였다. 두어 시간이나 우왕좌왕하다가 겨우 피아골[稷田]의 연곡사(鷰谷寺)에 도착하게 되었고 현지에 주둔한 군인들의 호의로 하루를 편히 쉬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당초의 목적지였던 쌍계사를 아깝게도 포기하고 군용 트럭을 편승하여 남원(南原)으로 향하였다. 남원에서는 광한루(廣寒樓)를 들렀다가 두 여학생의 쇼핑으로 열차를 놓치고 하루를 다시 머물게 되었다. 이튿날 겨우 열차를 타고 찾아 간 곳은 변산반도(邊山半島)의 해수욕장이었다. 학생들은 완전히 긴장을 풀고 그저 모래밭으로 밀려오는 창파에 정신을 잃고 해풍에 도취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하루를 쉬고 다음날은 귀로에 올라야하는데도 불구하고 도무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그저 바다에 사로잡혀 움직이질 않았다. 평소에 바다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생활한 형편이라 바다를 보고 완전히 정신을 빼앗기고 나아가서는 지리산에서 받아들인 그 형언할 수 없는 신비스런 감정도 완전히 날려버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학생들을 청주까지 인솔하여 해산시키고 다시 진주(晉州)에서 열리는 학술회의(學術會議)에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노심초사 끝에 겨우 학생들을 이끌고 청주에 돌아가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다시 야간열차를 이용하여 진주로 떠났다.
학생들이 나의 말을 순순히 따르지 않은 이유는 당초의 일정표에 있는 계획을 주장하는 것이었지만 그 마지막 일정은 만일의 경우를 위한 이틀간의 예비일이었고 변산해수욕장은 당초부터 없었던 것인데 나는 학생들을 계획대로 이끄는 데 실패한 것이었다. 나는 이때 나의 리더십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완전히 권위를 잃었고 산악반 지도교수를 포기할 것을 결심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학생들을 징계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되었다. 아무도 맡지 않는 지도교수를 내가 맡아서 수년 동안이나 그들을 도와 준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고 한 주일이 지나자 내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게 되고 흥분하였던 감정도 차츰 가라앉아 겨우 진정될 수가 있었다.
<대학> 전9장(大學 傳9章)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글이 보인다. “군자는 자신이 갖추어야 할 것을 먼저 갖춘 후에 남에게 갖추기를 바라고, 자기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린 후에 비로소 남이 버리지 못하는 것을 비판할 수 있다.”(君子求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군자란 흔히 말하는 인격자나 지도자를 가리킨다. 그들은 남보다 먼저 인격을 수련하고 나서야 남에게도 인격수련을 바라고 자신이 남보다 먼저 고칠 것을 고치고 나서야 남의 부족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본위의 사고와 판단으로 타인을 비판하며 자기도 같은 아집(我執)을 가지고 행사하면서 남의 고집을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은 지성인의 바람직한 인격이 아니며 바람직한 리더십이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을 반성하지도 않고 자신의 과오나 단점은 고치지 않은 채 타인에 대하여 무엇을 기대하기도 하고 비판하는 수가 많다. 가정에서는 아비가 게으르고 근신하지 않으면서 자식의 성공을 기대하고 직장에서는 윗사람이 게으르면서 아랫사람의 근면이나 충성을 기대하고 정치인들이 사리사욕과 실수를 반복하면서 국민이 지지해주기를 바라고 나라가 잘 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이에 속하는 것이다.
특히 교육자들은 모든 것이 학생들의 본보기가 되기 쉽기 때문에 삼가고 삼가야 한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조심스러운 것이다. 학생들은 스승의 행동거지를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모방하고 영향을 받는다. 직접적이거나 적극적인 모방이 아니라 스승의 언행을 비판하면서도 실지로는 그대로 모방하는 행위도 일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산악반 원정대를 인솔하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은 그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등반코스도 좀 더 정밀하고 철저하게 살펴서 파악해두었어야 하는데 산중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안내를 받았다가 길을 잘못 들었고 이틀간의 예비일에 대하여도 사전에 철저히 인식케 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소홀히 한 것이 나의 큰 실수였다.
수신(修身) 정심(正心) 성의(誠意) 치지(致知) 격물(格物)의 논리가 결코 구두선(口頭禪)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은 깨우치는 것 같다. 인류문화가 발전하고 국민의 문화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모든 영역에서 서로서로 유대가 필요하고 소통이 필요하게 되며, “군자구저기”(君子求諸己)의 철학과 원리를 체득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2019.5.1.)
---------------------------
‘월간수필문학’ 추천완료(1994). 수필문학추천작가회회원
수필집 다수 E-mail. d424902@hanmail.net
'청계산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연지기 (浩然之氣)에 대하여 (0) | 2020.01.11 |
---|---|
부부가 화목하는 것 (0) | 2019.11.09 |
내가 본 독도(獨島) (0) | 2019.05.26 |
사효당(思孝堂) (0) | 2019.05.26 |
황혼연설(?) (0) | 2019.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