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연설(?)
지 교 헌
내 나이 80이 훨씬 넘고 보니 내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은 거의 모두 ‘황혼연설’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사실상 ‘황혼연설’이란 무엇인지 그 개념을 엄밀하게 정의하지는 못하지만 그저 ‘하나마나한 늙은이의 잔소리나 넋두리 같은 말’로 여겨지기도 한다.
어제는 우발적으로 황혼연설(?)을 늘어놓고 왠지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은근히 뉘우쳐지기도 한다. 8년 전에 캐나다로 공부하러 간 외손녀들이 다 커서 하나는 대학의 신입생이 되고 하나는 3학년에 진급하게 되었는데 수년 만에 방학을 이용하여 한국에 온 것이었다. 약간의 장학금을 받기도 하지만 아직도 영주권을 얻지 못하여 상당히 많은 학비를 부담하고 있다. 가자마자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고 주일에는 세 모녀가 한인교회에 나가서 성가대에 참여하고 봉사활동도 다닌다고 한다. 주거비와 생활비에 학비까지 포함하여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들지만 그래도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당초엔 온 가족이 이민절차를 밟고 희망적으로 이민허가를 기다렸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니 좋은 직장마저 버리고 안이하게 도전하고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고도 느껴진다.
아이들이 캐나다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와서 가족들이 모두 모여 만찬을 하게 되었다. 외손녀들에게 영어로 장래의 희망을 발표하게 하고 서로 바꾸어 한국어로 통역하게 하였다. 내용을 요약하면 큰 아이는 교사가 되고, 작은 아이는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모든 가족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The Use of Life>>라는 책을 읽었다. 제1장은 ‘Great question’인데 그 책의 내용이 대단히 좋아서 몇 번이나 통독하였다. 읽기·쓰기·말하기의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자기의 생각을 글로 쓰고,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고교시절에 교내웅변대회와 충북도내 학생웅변대회에 출전하였었다. 대학에는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신입생등록까지 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국가의 방침에 따라 초등학교 교사로 복무하다가 대학 야간부에 진학하여 공부하였으며, 초등교사 시절에는 학교에서 느낀 교육문제를 글로 써서 지방신문에 투고하고 크게 인정을 받게 되었다. 석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조교 겸 강사로 근무할 때도 글을 많이 써서 인정을 받았고 국립대학의 전임강사로 갈 때도 글쓰기(연구논문)의 실적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사람은 언제나 어느 자리에 가던지 어른이나 책임자나 선배가 있으면 반드시 그 앞으로 다가가서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나서 제 자리를 찾아 앉을 것이며, 후배들에게도 될 수 있으면 다가가서 안부라도 묻고 관심을 보이는 것이 예절이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나 상대방을 존경하는 예의를 표시하면 인간관계가 매우 원만하게 되고 언젠가는 그 보이지 않는 효과가 알게 모르게 나타나게 된다.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는 결코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예절은 보상을 바라는 행위가 아님은 다시 말할 나위 없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요령은 많고 또 복잡하지만 그것을 요약하면, 실력을 기르고 그 실력을 나타내고 성실히 일하고 인내하고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 혼자서 독단하지 말고 부모님이나 스승님이나 선배님에게 기탄없이 의논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리고 아무리 외국에서 공부하고 외국에서 직업을 갖게 되고 외국에서 일생을 보내게 되더라도 모국어(한국어)를 소홀히 하지 말고, 말하고 읽고 쓰고 번역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매우 긴요하게 사용할 기회가 올 것이다. (이하생략)
나는 회식하는 자리에서 내가 말한 이야기들이 거의 모두 나의 체험을 통하여 깨달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의 권속들이 모두 나의 생각을 명심해주기를 바라고 싶었다. 나는 일제강점기에 태평양전쟁을 겪으면서 초등교육을 받고 광복 후에는 사회의 혼란과 6.25전쟁을 겪었으며 가난한 환경에서 여러 가지 역경을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깨우친 바가 있다. 그러나 요즘은 내가 살아 온 환경과는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 나의 경험이나 지식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체득한 모든 경험이나 지식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농업사회와 혼란기에 경험한 것은 후기산업사회에 적용되기 어렵고 오히려 그것이 역기능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이러하니 내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한 것이 어찌 늙은이의 하잘것없는 넋두리나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 ‘황혼연설’이 아닐까. 내가 아이들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한 것이 뉘우쳐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지금 태평양 상공을 날고 있다. 현지에서 초중등교육(12학년과정)을 마치고 내가 말로만 듣던 세계적인 명문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 기특하기도 하다. 모쪼록 건강한 몸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훌륭한 교육자가 되고 훌륭한 심리상담사가 되어 인류문화발전에 공헌하기를 바랄 뿐이다.
(2017.8.23.)
------
월간수필문학 추천완료(1994). 수필문학추천작가회 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국제PEN클럽한국본부회원
<<그들의 인생철학>> 외 수필집 및 논저 다수
'청계산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본 독도(獨島) (0) | 2019.05.26 |
---|---|
사효당(思孝堂) (0) | 2019.05.26 |
몽골 ‘낙타털양말’ (0) | 2019.01.07 |
미국에서 날아온 메일 (0) | 2018.12.14 |
피에타(Pieta) (0) | 2018.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