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르상티망(ressentiment)

송담(松潭) 2019. 3. 2. 23:42

 

르상티망(ressentiment)

 

 

 

 ‘르상티망(ressentiment)’을 여느 철학입문서에서처럼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일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 한마디로 시기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니체가 제시한 르상티망은 우리가 시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 감정과 행동까지도 포함한 조금 더 폭넓은 개념이다.

 

 이솝우화에 여우와 신 포도이야기가 있다. 여우가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했지만 아무리 애를 씨도 손이 닿지 않았다. 결국 이 여우는 이 포도는 엄청 신 게 분명해. 이런 걸 누가 먹겠어!”라며 가버렸다. 이는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의 진형적인 반응을 보여 준다. 여우는 손이 닿지 않는 포도에 대한 분한 마음을 저 포도는 엄청 시다라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해소한다. 니체는 바로 이점을 문제로 삼아 우리가 갖고 있는 본래의 인식 능력과 판단 능력이 르상티망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개인은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 복종한다.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꾼다.

 

 이 두 가지 반응 모두 우리가 우리 자신답고 풍요로운 인생을 보내는 데 큰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순서대로 살펴보자.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르상티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하고 복종함으로써 그 감정을 해소하려고 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명품 가방을 갖고 있는데 자신만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물론 누군가는 명품 가방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물건이 아니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같은 수준의 명품 가방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이 품고 있던 르상티망을 해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는 특별히 명품 가방이나 옷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페라리 같은 고급 자동차나 리처드 밀 같은 명품 시계의 세계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이들 고급 브랜드 상품이 시장에 제공하고 있는 편익을 르상티망의 해소로 볼 수 있다. 르상티망을 품은 개인은 르상티망을 해소하기 위해 상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르상티망을 새로 만들어 내면 낼수록 시장의 규모 또한 커진다. 오늘날 명품 시장이 대체로 호조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업계 관계자들이 극히 교묘하게 르상티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유독 평등에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약간의 차이에도 르상티망을 품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만들어 진 르상티망은 상징을 구입하는 형태로 해소되는데, 그리하여 명품 브랜드의 판매실적은 경제 저성장 사회에서도 꾸준히 상승세를 그린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로 르상티망을 계속 해소한다 해도 자신다운 인생을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르상티망은 사회적으로 공유된 가치판단에 자신의 가치판단을 예속 또는 종속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자신이 무언가를 원할 때, 그 욕구가 진짜 자신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타인이 불러일으킨 르상티망에 의해 가동된 것인지를 판별해야 한다.

 

 지금까지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이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반응, 즉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복종하는 일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번에는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꾸는 일의 위험성에 관해 고찰해 보자. 니체가 르상티망 문제를 다룬 것도 바로 이 두 번째 반응 때문이었다. 니체에 의하면 르상티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용기와 행동으로 사태를 호전시키려 들지 않기 때문에 르상티망을 발생시키는 근원이 된 가치 기준을 뒤 바꾸거나 정반대의 가치판단을 주장해서 르상티망을 해소하려고 한다.

 

 니체는 대표적인 예로 기독교를 들었다. 니체에 따르면 고대 로마 시대에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던 유대인은 줄곧 빈곤에 허덕였고 부와 권력을 거머쥔 로마인, 즉 지배자를 선망하면서도 증오했다. 하지만 현실을 바꾸기도, 로마인보다 우위에 서기도 어려웠던 그들은 복수를 위해 신을 만들어 내 로마인은 풍요로운데 우리는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우리 쪽이다. 부자와 권력자 들은 신에게 미움받고 있어서 천국에는 갈 수 없다는 논리를 세웠다. 니체는 신이라는 로마인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가공의 개념을 창조함으로써 현실 세계의 강자와 약자를 반전시켜 심리적인 복수를 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열등감을 노력이나 도전으로 해소하려 하지 않고 열등감을 느끼는 원천인 강한 타자를 부정하는 가치관을 끌어내 자신을 긍정하려 한 사고관이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사고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야마구치 슈(김윤경 옮김)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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