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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과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송담(松潭) 2018. 9. 29. 20:47

 

베트남 전쟁과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베트남 전쟁과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  - 미국 독립선언문 저2장 중에서 -

 

 모든 인간이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 미국독립 선언문은 미국의 근간을 이루는 국민적 합의이다. 그런데 이런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약소국가 국민들의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빼앗은 역사적 사실들은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베트남 전쟁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베트남 전쟁은 북베트남의 주도로 남·북 베트남이 통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남베트남과 미국이 일으킨 전쟁(1955-75)으로 20년에 걸친 긴 전쟁이었으며 세계 최강국 미국과 남베트남의 패배로 끝났다.

 

 왕조국가이던 베트남은 1885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속하게 되었다. 1940년 독일 나치에 패한 프랑스가 약해진 틈을 타 호치민은 베트민(베트남 민주공화국, 월맹)을 세우고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45년 독일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하자 호치민은 베트남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서 자신들의 지배권을 주장하여 1946년부터 1954년까지 전쟁이 벌어졌고 다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자 제네바에서 국제회의(제네바협정)를 통해 정전되었다. 제네바 회의의 합의에 따라 공산주의자가 주도하는 베트남 독립동맹은 북베트남이 되었고 비공산주의자가 이끄는 베트남 남반부는 남베트남이 되었다.

 

 제네바 협정은 국제감시위원회의 감독 아래 1956년에 베트남 전역에 걸쳐 자유선거를 실시하여 남·북이 하나의 정부 아래 통합하도록 규정했으나, 남베트남의 장군 고 딘 디엠은 남베트남에서 정권을 잡기 위해 예정된 선거를 치르기를 거부하고 남베트남 단독 선거를 단행했다. 미국은 남베트남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디엠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에 북베트남은 군사력으로 남·북 베트남을 통일하기 위해 훈련받은 무장 독립동맹 병사들을 고향으로 보내 암살·매복·공격·태업 전향공작 등의 게릴라전을 펼쳤다. 196012월 북베트남이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라는 조직으로 남베트남의 공산주의 반란자들을 통합하자,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많은 비전투 군사요원들을 파견했다. 이때 남베트남 주둔 미군 고문단의 수는 900명이었는데 19621.000명으로 늘어났으며, 케네디는 만약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전투를 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 남베트남의 디엠은 1963111일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에서 암살되었으며,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 전쟁에 전면적으로 개입했다. 남베트남 주둔 미군 병력은 1965년 말에 18만 명, 1967년에 389,000명에 달했다. 미군은 헬리콥터를 이용해 공격 목표지역으로 신속하게 병력을 이동하고 북베트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세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베트콩의 은폐·잠복·기습공격·매복공격을 당해내지 못했다. 이 전투는 베트남 전쟁이 결코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1967년부터 서서히 미국의 참전에 반대하는 여론이 고조되었고 미국의 전쟁 노력이 성공할 수 있는가. 베트남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196810월 존슨 대통령이 폭격의 완전중지를 명령했고 전투는 산발적이고 제한적으로 전개되었다.

 

 197317일 마침내 남베트남 공산주의 세력, 북베트남, 남베트남, 미국 사이에 파리 평화협정이 이루어졌고, 그해 말 남베트남 주둔 미군은 거의 철수했다. 정전 협정에도 불구하고 전투는 계속되었다. 1974년부터 변경 지역을 포기하기 시작한 남베트남군은 19754월 초에 남베트남의 북반부를 북베트남에게 내주었다. 421일 티우 대통령은 사임하고 타이완으로 도망쳤으며 뒤를 이은 두옹반민의 남베트남 정부는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베트남은 197672일 공식적으로 하노이를 수도로 하는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으로 통일되었다. 사이공은 호치민시로 개칭되었다.

 

 베트남 전쟁에 미국은 553천 명의 군 병력을 파견했고, 그중 58천 명이 사망했다. 남베트남군은 25만 명 이상 사망했고 NLF 군도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백만 가량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 전체의 민간인도 2백만 이상이 사망하거나 상처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라오스에는 파텟 라오(Patet Lao)라는 공산집단이 생겨났고, 캄보디아도 1960년대 공산주의자들이 확대되는 현상이 발생하여 인도차이나 지역에는 공산주의가 확산되었다.

 

 1964911일 대한민국은 비전투요원 이동외과병원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을 파견하였으며, 1965310일 공병대가 중심이 된 비둘기부대가 파월되었다. 196510월 맹호부대와 해군 청룡부대가 파견되었으며, 1966년 백마부대 등 약 30만 명의 병력이 베트남 전쟁에 파견되었다.

 

 1979년에 발표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베트남 전쟁 후 4년 만에 만들어진 반전영화다. 영화에는 네이팜탄, 양민학살, 마약, 여론 조작, 위문 공연 등 미국의 반전운동에서 제기되었던 모든 이슈들이 등장했다. 2001리덕스버전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베트남에 머물러 온 프랑스인들이 등장하여 영화의 흐름의 맥을 끊어놓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 부분은 미국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 직전에 베트남은 이미 프랑스의 식민지배 60, 프랑스와의 전쟁 8년을 통하여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른 상황임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그때까지 남아 있는 프랑스인들의 모습에서 베트남 내전에 개입한 미국이 프랑스처럼 정당하지 못하며, 따라서 이 전쟁의 끝도 프랑스와 같을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윌라드 대위(Captain Benjamin L. Willard 마틴 쉰 분), 킬고어 대령(Lieutenant Colonel Bill Kilgore 로버트 듀발 분), 커츠 대령(Chlonel Walter E Kurtz : 마론 브란도 분) 이렇게 세 사람이다. 영화는 윌라드 대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윌라드 대위는 커츠 대령을 제거하라는 임무를 띠고 베트남 전에 투입되었다. 사령부에서 받은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넝 강을 올라가면서 점점 커츠를 미치게 한 전장의 광기와 공포를 자신도 체험하지만 끝까지 임무를 완수한다. 킬고어 대령은 전형 적인 전쟁광이며 서핑광이기도 하다. 그는 적에게는 공포로, 아군에게는 용맹함으로 각인되기를 원하는 인물이다. 그는 서핑을 위해 전투를 벌이이도 했고, 적에게 공포 효과를 주기 위해 바그너의 악극 <발퀴레의 기행>을 틀어놓고 혤기부대로 베트남 마을을 완전히 쑥밭으로 만들었다. 커츠 대령과 함께 전쟁의 광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윌라드 대위가 제거해야 하는 커츠 대령은 미군 육사 하버드 대학 출신의 군인이며 한국전쟁 참전자로 장래의 참모총장감으로 평가되고 있을 만큼 엘리트였으며 경력이나 근무 평점도 확실한 인재였다. 대령시절에 특수부대 전출을 자청하여 젊은이도 힘들다는 모든 훈련과정을 이수하고 그린베레로 전출되지만, 캄보디아 접경에서 탈영하여 원주민을 모아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온갖 잔혹행위를 했다. 이것이 미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판단하여 사령부는 그를 암살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미국 특수부대의 윌라드 대위는 아직 전쟁 경험이 없는 4명의 병사틀과 함께 미국의 전설적인 군인이었던 커츠 대령을 제거하기 위해 캄보디아로 흐르는 강을 찾다가 킬고어 대령 부대를 만난다. 서핑을 위해 전투를 벌이며,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을 틀고 마을을 습격하여 쓸어버리는 등 전쟁을 유희처럼 즐기는 그에게 윌라드 일행은 흥미를 가진다. 킬고어 대령의 부대가 헬리콥터로 한 마을을 쓸어버릴 때 미군은 마치 장난하듯이 인간을 사냥하며 삶의 터전을 파괴한다. 껌을 질겅질겅 씹고 웃으며 농담하고 음악을 트는 미군들의 모습에 등이 오싹해지며 관객은 분노하게 된다.

 

 

발퀴레의 기행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북구신화 속에 등장하는 발퀴레는 날개 달린 말을 타고 전쟁터를 돌아다니다가 발할성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지키다가 죽은 용사들의 영혼을 성으로 운반하는 임무를 띤 9명의 전쟁 여신들이다. 주신보탄과 지혜의 여신 에르다 사이에서 태어났다.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이 전쟁터에서 울려 퍼질 때, 헬리곱터를 타고 하늘을 나는 미군은 마치 발퀴레처럼 우월하고 전능한 존재가 되어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쥔 절대자가 된다.

 

 <발퀴레의 기행>은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중 두 번째 발퀴레의 제3막의 서곡이다. 니벨룽겐의 반지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4개의 오페라로 이루어져 총 14시간 30분이나 소요되는 초대작이다. 이 대편성의 악극은 바그너 평생의 이념이 담긴 것으로 기획에서 완성까지 26년이 걸렸다. 바그너는 주로 게르만의 전래 설화와 무용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남겨 독일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예술가로 추앙받는 작곡가다. 니벨릉겐의 반지는 규모나 내용 면에서 바그너 작품 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그는니벨룽겐의 반지에서 게르만 민족을 발트해에서 라인강에 이르는 척박한 북유럽을 무대로 군림했던 용맹하고 저돌적인 전사들의 후예로 그리고 있다. 바그너가 주장한 게르만의 강인하고 활달한 전사로서의 민족성은 20세기 초 독일인의 배타적인 일체감조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게르만 ·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전체주의와 국수주의의 광기에 빠져들었던 히틀러가 바그너 음악을 애호하고 장려했던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로 이스라엘에서는 아직도 그의 음악을 금기시한다.

 

이인화 / ‘O.S.T. 코드 : 클래식중에서

 

발퀴레의 기행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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