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파블로 카잘스

송담(松潭) 2018. 9. 12. 13:55

 

 

파블로 카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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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첼로의 전설 

 

 20세기를 대표하는 첼로의 전설, 영원한 첼로의 성자로 불리는 파블로 카잘스는 1876 1229스페인에서 태어났다. 카탈루냐 벤드렐 마을의 유명한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 덕분에 일찍부터 건반음악에 관심을 가진 카잘스는 9세부터 오르간 연주를 시작했다. 뛰어난 재능과 노력 덕분에 아버지가 몸이 아플 때면 대신 가서 오르간 연주를 할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었다.

 

 오르가니스트를 꿈꾸던 카잘스가 첼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1세 무렵 마을에서 열린 피아노 트리오 연주회를 본 후였다. 처음 본 첼로의 음색은 카잘스를 매료시켰고 그는 그때의 감동을 이렇게 회상했다. “첼로의 첫 음을 듣는 순간 숨을 쉴 수도 없을 만큼 압도되었습니다. 무언가 부드럽고 아름답고 인간적인 빛이 내 속을 가득 채웠죠. 그날부터 첼로를 사 달라고 매일 졸랐죠.” 부모님으로부터 4분의3 사이즈 첼로를 선물 받은 카잘스는 바르셀로나 음악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첼로를 공부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부활시킨 장본인

 

 파블로 카잘스는 오랫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부활시킨 인물로도 유명하다. 바르셀로나 음악원 재학 시절인 열세 살 무렵 우연히 한 서점에서 낡은 악보를 찾게 된 카잘스는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홀로 악보를 탐구하고 연습한 끝에 비로소 이 곡을 세상에 알렸다. 카잘스의 연주 이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그 가치가 알려지면서 오늘날 첼리스트들의 필수 레퍼토리가 되었다. 카잘스는 60세가 되어서야 이 곡을 음반으로 녹음했다.

 

 1961년 카잘스는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 백악관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1971년에는 UN의 날을 맞아 뉴욕 UN 평화 메달의 수상자인 카잘스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카잘스는 자신이 작곡한 미국에 대한 찬가UN 찬가를 직접 지휘하며 음악회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이날 그는 고향인 카탈루냐의 민요 새의 노래를 연주하기도 했다. 카잘스는 생의 말년을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엘 페세브레’(El Pessebre)라는 이름의 집에서 보냈다.

 

 ‘말구유라는 뜻을 가진 이 집은 카잘스가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 카탈루냐를 생각하면서 지은 집이었다. 매일 아침 바흐의 평균율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한 카잘스의 하루는 말년에도 여전히 음악과 함께였다. 왕성한 연주 활동은 아니었으나 이곳에서도 음악 축제를 만들었고 고국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관심이 세계 평화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져 난민 구호 협회와 평화 캠페인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년 후인 19739월 말, 카잘스는 심장 발작을 일으킨 후 병원에서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감했다.

 

 출처 : 클래식 백과, 글 정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