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거리를 두는 것은

송담(松潭) 2018. 4. 25. 08:22

 

거리를 두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겠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거리 두기를 상대방을 차단하고 무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신경을 끄지 못한다. 상대방이 나로 인해 약간이라도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면 괜히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린다. 반대로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조심하기는커녕 태도의 변화가 없으면 화가 나게 된다. 여전히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에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거리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존중을 넣는 것이다. 이때 존중은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그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고치려고 들지 않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지 않고 그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환자들의 경우 마음이 아픈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환자가 가진 생각이 내 가치관이나 철학과 다르다고 해서, 설령 환자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함부로 비판하거나 섣불리 고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최대한 많이 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존중이다.

 

 다만 거리를 두는 것은 나도 당신을 존중할 테니 당신도 나를 존중해 달라는 의미다. 내가 상대방을 함부로 훠두르려고하지 않듯 상대방도 나에게 그럴 권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혀는 것이다. 언젠가 어느책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그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으며 그 공간 사이에 반응을 선택할 힘과 자유가 있다. 그 선택 속에 나의 성장과 행복이 존재한다.”

 

 시어머니가 미웠을 때 내가 밤에 잠을 설칠 만큼 괴로웠던 까닭은 이 어긋난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내일도 모레도 그런 시어머니를 매일 봐야 한다는 게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는 더 커져만 갔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감정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거리를 두자 똑같은 비난을 들어도 그것이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냥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좀 더 주도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시어머니와도 잘 지내는 법을 익혔는데 못 할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 같으면 나와 너무 달라 싫었던 사람들과도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내가 좀 더 행복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사람을 대할 때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않을 만큼만이라는 말을 남겼다. 서로 덜 상처주면서 살고 싶다면, 관계로 인해 더 이상 괴롭지 않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거리를 두어라. 둘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은 결코 서운해야할 일이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서로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는 경험해 보면 바로 깨닫게 될 것이다,

 

김혜남/ ‘당신과 나 사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