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거리감
이미지 출처 : 구글이미지(국민일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거리를 숫자로 똑 부러지게 분류한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입니다.
‘밀접한 거리’는 0-46cm입니다. 서로 만지고 체온을 느끼고, 체취를 맡고 상대방의 심장 고동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입니다. 엄마와 아기, 사랑하는 연인,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의 간격이겠죠. '개인적 거리'는 46cm~1.2m입니다. 손을 쭉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로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와의 거리입니다.
'사회적' 거리는 1.2-3.6m로 회사에서 회의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는 거리입니다. 공식적이고 사무적인 관계이지요. ‘공적인 거리’는 3.6~7.5m입니다.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 공연장에서 공연자와 관객의 거리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들불처럼 일고 있는 미투(Me To)운동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4가지 거리를 잘 지켰다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감독이 배우에게, 시인이 후배에게, 교수가 학생에게, 정치인이 자기 직원에게 당연히 지켜야 할 ‘사회적 거리’와 ‘공적인 거리’를 힘 있는 자가 제멋대로 밀접한 거리로 바꾸려 한 것이 성적 폭력의 시작입니다.
에드워드 홀의 물리적 거리와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정서적 거리’입니다. 누군가가 “이상하게 요즘 내 자식에게 거리감이 느껴져”라고 한다면 이는 정서적 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와 내 몸의 거리가 물리적 거리라면, 네 마음과 내 마음의 거리가 정서적 거리입니다. 그리고 이 거리가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소중한 것을 ‘가족’이라고 합니다. 사랑을 가장 많이 주고받는 관계가 가족이라는 것에 이견을 달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 대상 역시 가족이라고 합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사랑을 주고받아야 할 가족이 상처를 주고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는 소파에 바짝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밀접한 거리'는 가능하지만 건강한 ‘정서적 거리’는 유지하지 못해 생기는 불행입니다. 남이라고 생각 안 하니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함부로 행동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 생각하니 자식이 조금만 잘 못해도 서운하고 분노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당연히 자식에게 양보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부모의 서운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에서 상처받고, 밖에 나가 서로 예의를 지키는 친구에게 위로받습니다.
좋은 관계는 아름다운 거리감을 지킬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남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남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예의와 배려 그리고 거리를 지켜야 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나무들로 빽빽한 숲속에서도 나무와 나무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햇빛과 영양분을 확보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고 공생합니다.
더없이 특별한 가족이라면, 정말 좋은 친구라면, 너무나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와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해 당신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보세요. 귀한 도자기를 바라보는 거리만큼 그와의 간격을 유지해보세요. 도자기가 사랑스럽다고 품에 꽉 안는다면 도자기는 쨍그랑 깨지고, 나는 부서진 조각에 베이잖아요.
글/윤용인 ddubuk1@naver.com
(공무원 연금 2018.4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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