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바라보기
< 1 >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상대방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여보는 것입니다.
저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그의 말이 들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할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저의 의식과 무의식은 끊임없이 제가 할 말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할 말이 생각나면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말 할 타이밍만 엿보고 있으니 상대방의 이야기가 제대로 들릴 리 있겠습니까?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 제가 그를 향해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소통을 원한다면 대화 중엔 내가 할 말만 찾지 말고 오직 상대방의 이야기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상대방의 이야기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됩니다. 나의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상대방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리는 것은 상대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나를 위해서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침묵을 통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 아닐까요?
< 2 >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편견 없이 인간과 인간의 상황을 바라보고
사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편견의 사전적 의미는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입니다. 편견이 많을수록 못마땅한 것들이 많아집니다. 못마땅한 것들이 많은데 행복해 질 수 있겠습니까? 편견이 많을수록 창의력과 상상력은 줄어듭니다. 창의력은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힘인데 한쪽으로 치우친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창의력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초등학교 시절 미술대회 날이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으로 소방차 한 대가 들어왔습니다. 소방차를 그리는 대회였습니다. 제 어릴 적 꿈이 화가였기 때문에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크레파스가 없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엄마에게 크레파스를 사달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미술시간만 되면 친구들의 크레파스 빌려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친구들이 크레파스를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소방차는 빨간색으로만 그려야 하니 빨간색 크레파스를 빌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니 자신의 크레파스를 뚝 잘라 주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미술대회가 다 끝나갈 무렵 빨간색 크레파스를 겨우 빌려 아무렇게나 소방차를 그려서 냈습니다.
그런데 저희 반엔 저와 똑같은 형편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도 빨간색 크레파스를 빌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저와 달랐습니다. 그 아이는 친구로부터 빨간색 크레파스 빌리는 대신 검은색 크레파스를 빌렸습니다. 그러고는 소방차 한 대를 온통 검은색으로 칠했습니다.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였으니 그림 위에 글자도 몇 자 써넣어야 했습니다. 그 아이는 그림 위에 아주 큼지막하게 이렇게 썼습니다.
소방차도 불에 탄다
대박이죠! 무시무시한 불은 소방차까지 태워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소방차는 빨간색으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 아이는 “소방차는 왜 빨간색으로만 그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소방차는 반드시 빨간색으로만 그려야 한다는 생각은 편견일지도 모릅니다.
< 3 >
나에게 혹은 타인에게 유난스러운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지난날의 상처와 맞닿아 있습니다. 지난날의 상처가 괴물이 되어 우리의 유난스러움을 만든 것입니다. 지나친 결벽증이 있거나, 지나치게 자신을 내세우거나,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지나치게 소심한 것도 지난날의 상처와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냉소적이거나, 지나치게 불평을 늘어놓거나 지나치게 열등감을 느끼거나, 지나치게 부정적이거나, 심지어는 지나치게 타인을 배려하는 것도 지난날의 상처와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상처가 나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차라리 침묵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내면’과 ‘종교’와 ‘윤리'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에게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보라고 주문한 것 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은 누군가의 허물을 보았다 해도 함부로 그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의 지난날의 상처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거라고 여기며 한 번 더 그를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보았을 때도 쉽게 절망하지 않고 자신을 성찰합니다.
< 4 >
민들레의 눈높이
당신은 김밥을 좋아하시나요? 나는 김밥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김밥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사람들 가슴 속에 소풍이라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밥을 만들 때 김밥 속엔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갑니다. 단무지, 계란, 햄, 시금치, 오이, 당근 형형색색의 재료가 들어간 김밥 속은 앞마당의 꽃밭처럼 화려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김밥 속이 화려해지면 화려해질수록 김밥은 빨리 상한다고 합니다. 신기하게도 사람 사는 모습도 꼭 김밥 속 같습니다. 삶이 화려해질수록 그 사람의 영혼도 빨리 상해버리니까요. 삶이 화려해지고 높은 곳에 오를수록 사람들은 낮아질까봐, 초라해질까봐 늘 불안해합니다.
당신과 나는 항상 최고가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만 받겠다고 생각하지도 말고요. 꿈이 너무 많은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 하나를 켜면 별 하나가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꿈 때문에 당신이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위해 나도 조용히 불을 끄겠습니다.
당신과 나는 들꽃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꽃을 피워야만 사랑받는 튤립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꺾일지 몰라 불안해하는 백합도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소리 없이 피고 지는 들꽃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아름답게 흔들릴 줄 아는 들꽃, 아무 곳에나 피어나지만 아무렇게나 살아가지 않는 그런 들꽃 말입니다. 제비꽃, 달맞이꽃, 패랭이꽃, 엉겅퀴꽃, 찔레꽃, 아기별꽃, 민들레.... , 이 꽃들은 여치 울음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제 영혼의 키를 키울 줄 아는 들꽃입니다. 보슬보슬한 흙 위에 누워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바라볼 줄 아는 눈빛 맑은 들꽃입니다.
당신이 피워낸 아름다운 꽃이 엉겅퀴 꽃이나 찔레꽃처럼 몇 개의 가시가 있다 해도 괜찮습니다. 셍택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사랑했던 장미는 네 개의 가시를 만들어 세상과 맞서 자신을 지켰습니다. 당신과 나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몇 개의 가시를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 날카로운 가시는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시일 수도 있지만 우리 자신을 찌르는 가시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거대한 세상과 대적하기엔 우리의 가시는 너무 연약했고 우리의 마음 또한 여렸습니다. 당신과 내 마음 속에 뾰족한 가시가 있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 또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뾰족한 가시를 만들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진 뾰족한 가시를 당신의 운명처럼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시가 없는 당신을 세상이 송두리째 삼켜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은 민들레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가시를 운명처럼 사랑합니다. 또한 자신이 가진 ‘가시’를 긍정 할 때 상대방의 ‘가시'도 인정할 수 있음을 그는 알고 있기에 더욱 깊은 시선으로 삶과 세상과 사람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게도 가시가 있는 것처럼 상대방에게도 가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곁에 머물 수 있겠네요.
< 5 >
이 그림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침팬지가 있는 동물원이 보이셨나요? 내 생각에 대한 지나친 확신을 잠시 내려놓고 내 입장도 잠시 내려놓고, 내 짐작도 잠시 내려놓고, 내 편견까지도 잠시 내려놓으시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보이실 지도 모릅니다. 그림 속에 있는 침팬지를 더 유심히 보시지요. 쇠창살 속에 갇힌 것은 침팬지가 아니라 우리일 수도 있습니다. 한쪽 손을 뒤로 감춘 침팬지가 쇠창살 바깥에 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쇠창살 안에 갇혀 있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철환 / ‘마음으로 바라보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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