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말러의 ‘피아노 4중주’

송담(松潭) 2018. 1. 20. 23:01

애틋한 우울과 질풍노도의 감성,

말러의 피아노 4중주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

 

음악사를 되짚어보면 실내악은 한때 애호가들을 직접 겨냥한 마케팅으로 사랑받았다. 악기의 대중적인 보급과 악보 인쇄술의 발달은 실내악 인구를 확장시켰던 직접적 촉매였다. 덕분에 전문 연주자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음악가들도 내 악기로 직접’ ‘친구들과 함께실내악을 연주하면서 음악을 한층 더 가까이 향유할 수 있었다. 작곡가들은 그리 어렵지 않은 친절한 실내악곡을 출판해 짭짤한 수입을 올렸는데, 이는 생계유지에 큰 보탬이 되기도 했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모차르트는 출판업자(F A 호프마이스터)로부터 피아노 4중주를 위촉받는다. 생애 첫 피아노 4중주에 모차르트는 자신이 편애하던 g단조의 조성을 입히며 심혈을 기울인다. 하지만 악보를 받아든 출판업자는 계약을 파기한다

 

 “너무 어려워서 팔리지 않을 것이란 상업적인 이유에서였다. 애호가들을 위한 실내악곡이 당시 얼마나 유행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출판업자에게 타협하는 돈벌이 대신 예술성을 고집한 작곡가의 패기가 인상적이다

 

 트리오 편성(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에 중음역 악기인 비올라가 합류한 피아노 4중주는 작곡가에게 매혹적인 장르이다. 서로가 종속적인 트리오보다 각 악기군의 활약이 훨씬 더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2대의 현악기로는 온전한 화음을 만들 수 없지만, 3대의 현악기군은 이미 자체적으로 음역을 꽉 채울 수 있다. 현악기군은 피아노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고, 피아노는 현악기의 공백을 메꾸느라 헐떡거리지 않아도 된다

 

 말러의 피아노 4중주 가단조는 소실되지 않고 온전히 남아있는 그의 유일한 실내악 작품이다. 이 곡을 작곡했을 때 말러는 갓 16세 소년이었다. 14남매 중 가장 친밀했던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이 오랜 병을 극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버리자, 말러는 깊은 상실감에 빠지고 만다. 그 애틋한 우울이 질풍노도의 감성과 함께 오선지에 아로새겨져 있다

 

 이 피아노 4중주를 이해하기 위해선 직후에 작곡된 탄식의 노래(Das klagende Lied)’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러는 극음악의 줄거리로 잔혹동화를 선택한다.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형의 괴로움은 자신이 동생을 죽였을지 모른다는 강박으로 비화했던 것일까. 피아노 4중주를 작곡한 직후 말러가 사로잡힌 잔혹동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름다운 여인을 얻기 위해 형제간 다툼이 일어나고, 결국 형은 동생을 살해해 버린다.’

카인과 아벨의 콤플렉스. 사춘기 소년이 목도했던 어린 형제의 죽음은 그 후로도 말러의 인생 전반에 깊은 그늘을 드리운다. 덕분에 우리는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어린이가 본 천국(교향곡 4)’처럼 음악으로 응결된 슬픔의 결정체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지인의 소개를 통해 시 한 편을 만났다. 아이의 죽음이 담긴 처연한 슬픔이 말러의 피아노 4중주와 상통해 심금을 울린다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 밥상에 아이가 없다

 아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아기가 웃는다

 아기는 방 속을 들여다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아기가 간다

 맨발 벗은 아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림자마저 아른거린다

 - 김광균 은수저’ 

 

 조은아 | 피아니스트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20.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