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 첫사랑 또는 끝사랑
슈만(1810~1856)은 독일의 19세기 낭만 음악가로 피아노 음악, 가곡, 교향곡의 대가이며 저술 평론가로 이름을 떨친 음악가이다. 젊은 시절 슈만은 집안 형편상 음악가로서의 꿈을 접고 라이프치히의 법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시대를 풍미하던 낭만 문학과 음악 예술에 푹 빠져 음악가의 삶을 다시 시작했다. 당대 유명한 선생이었던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ck)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슈만은 빨리 성공을 이루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무리하게 연습을 하였고, 그 결과 손가락을 심하게 다치게 되었다. 이후 전문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은 그는 문학과 음악이 결합된 표제적 낭만 피아노 음악을 발표하며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슈만은 매우 낭만적인 사람으로 그의 사랑과 결혼 또한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으로 꽤 요란한 스캔들을 남겼다. 슈만에게 끝사랑은 바로 자신의 피아노 선생의 딸이었던 클라라 비크(Clara wieck, 1819-1896)였다. 처음 만났을 때 클라라는 아홉 살 꼬마였지만 피아노 신동으로 알려지며 음악계에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1834년 스물네 살의 슈만은 갓 열다섯 살이 지난 클라라와 사랑에 빠졌고, 이 둘은 남몰래 사랑을 키워 갔다.
천재 여류 피아니스트로서 딸의 명성을 지켜나가고자 했던 클라라의 아버지는 이들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았다. 그는 슈만을 지금으로 치면 '미성년자 약취 유인죄'로 고소했다. 이에 맞서 슈만 또한 명예훼손죄로 미래의 장인을 맞고소 하며 장장 6년에 걸친 송사를 치렀다.
지루한 법정 다툼이 이어지는 가운데도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이 사랑의 표현은 슈만의 작품들에서 꽃을 피웠다. 슈만의 <카니발 Op 9>은 낭만 표제 피아노 음악의 대표작으로 인물 묘사가 가득한 음악적 사육제이다. 쇼팽, 파가니니뿐 아니라 '키아리나‘라는 제목으로 등장하는 클라라를 묘사한 음악은 사랑에 빠진 젊은 작곡가의 열정적 선율을 들려준다. 결국 법원의 허가를 받고 슈만과 클라라는 1840년에 결혼에 성공했다. 이 해는 슈만에 있어서 ‘가곡의 해'로 불리는 시기로 낭만 서정시와 음악의 결합체인 아름다운 가곡들이 봇물 터지듯 작곡되었다.
브람스의 첫사랑
브람스(1833-1897)는 스무 살 되던 해에 슈만 부부를 만났다.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의 반주자로 유럽을 돌며 명성을 쌓기 시작한 브람스는 친구 요아킴의 소개 편지를 들고 1853년 뒤셀도르프의 슈만 부부를 방문했다.
슈만은 청년 브람스의 음악이 ‘1800년대 중반의 낭만 음악이 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자신의「음악 신보」에서 높이 평가하고 브람스와 음악적 유대감을 돈독히 했다. 슈만 부부와 브람스의 관계는 1854년 슈만의 자살 시도로 급격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평소 조울증을 가지고 있던 슈만은 작품과 가정환경에서 오는 부담감으로 신경쇠약이 극에 달해 라인 강에 투신을 시도한 후 정신병원에 수용되었고, 클라라는 당대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로서의 콘서트 투어와 여덟 아이의 양육, 가족 부양을 한꺼번에 짊어지게 되면서 사면초가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만사 제쳐놓고 달려온 이가 바로 브람스였으며, 브람스는 슈만이 죽을 때까지 슈만 가족을 보살피며 함께 지냈다. 삼촌같이 슈만의 아이들과 돈독한 관계를 가졌던 브람스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민요들을 통해 자신의 가곡의 틀을 마련하기도 했으며, 남편인 슈만의 작품을 대부분 초연하고 본인의 작품을 쓰기도 하는 클라라로부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조언을 끊임없이 구했다. 특히 브람스가 남긴 낭만 피아노 변주곡의 명작인 <헨델 주제에 의한 피아노 변주곡Varitions on a theme by Handel,Op 24>은 클라라 슈만의 42세 생일에 헌정되었으며, 클라라는 기꺼이 이 곡을 초연하였다.
음악적 공생 관계뿐 아니라, 슈만 사후 브람스는 ‘그녀의 마술에 걸린 것처럼 그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클라라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였지만 클라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14년이나 연하인 브람스와의 사랑은 결코 세상 눈에 아름답게 비쳐질 리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후 브람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클라라와 ‘썸 타는’ 우정 이상의 관계를 평생 지속하였다. 클라라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브람스는 그녀의 마지막을 애도하는 심정을 담은 <네 개의 엄숙한 노래 Op.121>를 작곡했다. 클라라 사후 브람스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1년 후 간암으로 그녀의 곁으로 가게 된다.
두 천재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클라라
슈만, 클라라, 브람스, 이 세 사람의 사랑은 결코 평범하다고는 볼 수 없는 관계였으며,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며 해피엔딩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지만 클라라의 입장을 살펴본다면 ‘그녀만큼 사랑에서 파생된 관계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꼈던 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낭만 음악사에 길이 남는 두 천재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자신을 위한 훌륭한 작품들을 헌정받았으며 그 작품들을 연주하며 온 유럽 의 찬사를 받았으니 말이다.
이들의 사랑은 너무 사랑해서 온갖 진을 빼며 서로를 소진해 갔거나, 또는 너무 사랑해서 결코 같이 할 수 없었던 사랑의 아이러니를 보여 주는 특별한 사람들의 슬픈 인연이었다.
김현경 / ‘서양 음악사 산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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