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양 수필

베트남 하롱베이에 다녀와서

송담(松潭) 2018. 3. 8. 13:50

 

베트남 하롱베이에 다녀와서

 

 

 

 

 

 

 

여행은 함상 새로움을 선사한다. 중국으로 가려던 것을 사드(THADD) 관련으로 부득이 베트남의 하롱베이로 결정했다. 일본東京(도쿄)-橫濱(요코하마), 타이완台北(타이베이)에 이어 세 번째 외국 나들이는 베트남 여행이다.

 

 베트남(Viet Nam)의 공식명칭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공식 언어는 베트남어이고 프랑스어, 중국어, 영어, 크메르어도 사용된다. 194592일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으나 그 후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갈라졌다가 19754월 통일되었다. 면적은 33k로 한반도의 1,5, 섬은 3,000여개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1,969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서북쪽에서 동남쪽까지 최대길이는 약 1.650km,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는 하노이(Hà N0i,河內). Ha는 강, NOi는 안쪽이라는 뜻이며 최대도시는 옛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西貢)인 호치민(HO Chi Minh,胡志明)이다. 화폐단위는 동(Ddong)이고, 우리나라와의 시차는 2시간이 늦다.

 

 베트남의 인구는 9,616만으로 매년 100만명이 태어나고 있으며 54개 민족으로 이루어졌다. 1가구당 2.2명으로 인구 최대 과밀국가 중의 하나다. 진체인구의 60%30대 이고, 70-80%가 농촌에 살고 있으며 남부지방보다 북부가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1인당 GDP 1,700달러이고, , 후추, 커피의 세계 3대 생산국이다. 우리나라와 무역이 활발하고, 관광업의 신장이 중요 외화 획득원이다.

 

 근대에 베트남은 나라와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1945년 호치민은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했으나 프랑스와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여 베트남군이 대승하였다. 그러나 서구 열강은 제네바협정을 통해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단시켰다. 그 후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 전쟁을 벌렸고 우리나라는 19649월 의무증대를 파견한 이래 맹호, 청룡, 비둘기부대 등 전투사단을 파견하여 한때 남베트남 파견 장병수가 4만명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1973년 파리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모두 철수했다. 남베트남 정권이 무너지고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로 통일된 후 북한은 이전 북베트남 시절에 맺었던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한국은 베트남 통일 후 17년만인 19921222일 수교에 합의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1955-1975) 시골에서 도시지역으로 인구의 대이동이 이루어졌는데 주로 남부에서 있었다. 교육은 9년간 의무교육으로 무상이며 정부발표에 의하면 1970년대 말 문맹은 근절되었다고 한다. 베트남의 직장인들은 거의 이륜차로 출퇴근을 하고 있어 이륜차 천국이다. 이륜차가 550만 대이고 가끔 소형차가 보이는데 소형차(모닝)2,500만원 정도로 한국에서 그랜저로 생활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하롱베이(Vinh Ha Long,泳下龍)는 베트남 북부, 통킹만 북서부에 있는 만()으로 크고 작은 3,000개의 기암괴석과 섬들로 이뤄졌다. 할롱만은 해안선 120km, 면적 1,553, 고온다습한 여름과 춥고 건조한 겨울의 두 계절을 가진 열대우림 기후를 가진 곳이다. 섬들은 대부분 무인도라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아 천연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들을 블 수 있다. 170여종의 산호초와 야자수, 멸종위기의 캣바랑구르원숭이 등이 있다. 1994년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목록가운데 자연공원으로 등록되었고, 날카롭게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을 이루는 작은 섬들, 환상적인 동굴이 절경을 이룬다. 하롱베이에서 Ha내려온다’, Iong의 뜻으로 Ha Long이란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라는 의미다. 침략자를 막기 위해 하늘에서 용이 이곳으로 내려와 입에서 구슬을 내뿜자 계곡과 동굴들이 생겨나 현재와 같이 수많은 섬들을 이루었다는 얘기다 섬들 가운데 동굴이 있는곳도 많은데 대표적인 곳이 항 두 고(hang du go)동굴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동굴을 대리석 동굴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크고 웅장한데 무려 90개의 계단을 올라야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생략...)

 

 1970년대 초 여덟 살 위의 형이 월남으로 파병을 가 편지를 받을 때마다 상상했던 이국 땅 베트남! 상상은 아름다우나 빌딩 숲인 서울에 살면서 오히려 고향이 그리운 것처럼 베트남도 현지인들의 삶을 보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과 현지인들의 삶의 모습은 항상 공존하면서도 이중적 가치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젓인가? 어릴 적 자동차 소리만 들어도 신기해 마을 어귀에 나와 구경하며 도시를 동경해 왔다.

 베트남 여행을 동해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결과에 작은 보람을 느낀다. 사는 동안 이웃과 더불어 이 사화의 아픔도 같이 느끼면서 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굳은 마음가짐을 가져본다.

 

 장기양(張基場) / 郵 趣春秋 2017(No.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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