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괴물' 그 사이에서
내가 지금 고집하면서 내 삶의 푯대로 삼고 있는 내 생각을 나는 갖고 태어났을까? 아니다. 그럼 내가 지금 고집하면서 내 삶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는 내 생각을 내가 창조했을까? 아니다. 그럼 내가 어제 고집했고 오늘 고집하며 내일 고집할 내 생각을 내가 선택했을까? 선택한 게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의 총량 중 그것은 지극히 미미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내가 갖고 태어나지 않았고, 내가 창조한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것도 아주 미미한 생각을 우리는 고집하면서 살아간다. 회의도 없이!
우리를 지배하는 세력은 얼마나 편할까? 우리로 하여금 그들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하는 생각만 심어 주면 되니 문제는 이러한 복종의 과정에서 우리는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되지 못할지언정 괴물은 되지 말라고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될 위험에까지 노출되는 것이다. 지배자들은 나에게 괴물의 생각을 심어 주기만 하면 된다. 다음은 <이것이 인간인가>의 저자 프리모 레비의 말이다.
인간 괴물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 숫자가 많지 않아서 그리 위험하지 않다. 오히려 위험한 사람은 보통사람들이다.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기계적으로 믿고 따르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로 유명해진 ‘악의 평범성’과 만나는 말이다. 지배자들이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기계적으로 믿고 따르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쯤이야 여반장이 아닐까? 이미 우리는 회의할 줄 모르는 사람들, 다시 말해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는 사람들”이다.
통계에 의하면 9명 중 1명이 왼손잡이라고 한다. 오른손은 ‘옳은 손’에서 왔고, 또 우리는 흔히 ‘바른 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right hand)나 프랑스어 (main droite)도 마찬가지여서 옳은의 의미를 가진 'right', droite'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왼손은 ‘틀린’ 손인가? 오른손, right, hand, main droite' 등으로 쓰게 된 것은 세상에 오른손잡이가 많다는 것 이외에 그 어떤 근거가 있을까. 언어는 생각의 집이다. 좌우 동형으로 평등한 오른손과 왼손에 대해서조차 이처럼 다수/소수에 따라 옳고/그름으로 구분해 온 인류 역사에서 가령 성소수자들은 어떤 처지에 놓여야 했고 놓여 있을까?
사람은 자기와 아주 똑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수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스럽게 여긴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신과 다르다는 점에 안도하면서 반겨야하는데 그러지도 않는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차이를 찾으려 애쓰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기와 같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 모순은 남에 비해 내가 우월하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만족해하려는 저급한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기의 우월성을 확인하면서 스스로 만족해하려는 저급한 속성은 필연적으로 나와 다른 남을 나보다 열등한 존재로 자리매김하면서 차별, 억압, 배제하는 데 쉽게 동의하도록 작용한다. 대중의 이런 속성을 십이분 활용하는 자들이 바로 지배자들이며 이들은 이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더욱 키워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다르다'는 말을 곧잘 '틀리다'라고 말한다. "나와 다른 너는 틀린 자로서 우등한 나에 비해 열등하며, 정상인 나에 비해 비정상이다." 이와 같은 타자 규정은 사상이나 종교가 다른 경우 우열 관계나 정상/비정상의 관계를 넘어 ‘선악 관계’로까지 증폭된다. “우리는 선인데 너희들은 악이다. 악은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 지상에 일어난 끔찍한 학살들이 대부분 여기서 비롯되었다. 인류사는 종교와 사상이 다른 타자를 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렇게 규정한 내가 악이 된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홍세화/ ‘사람과 괴물 사이, 회의하고 또 회의하라!’중에서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당히 잘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0) | 2018.02.06 |
---|---|
구운몽 (0) | 2018.01.30 |
사랑의 능력, 대화의 능력 (0) | 2017.12.28 |
언어, 그 꽃의 빛남 (0) | 2017.12.18 |
글쓰기가 두려워요 (0) | 2017.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