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은둔자
김 원
근월에 작고하신 김종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님이 몇 해 전에 내가 사는 안동 내앞(川前) 고택에 오셨다. 아침시간이라 커피를 내놓고 동네제배들 몇 명하고 소담을 하는 자리에서 내가 고향에 내려와 있는걸 보시고 퍽 흐뭇해하시며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내 마음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런 분이 고향에 와 계시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낙향한 또래들 몇이 정기적으로 만나는데 그 모임의 작명을 부탁했다. 그는 낙향, 귀촌, 귀향 등 몇 개를 언급하시더니 귀천(歸川)이 좋겠다고 하셨다. 빨가벗고 개천에서 미꾸라지 잡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니 정말 멋지다. 시인다운 작명에 모두 만족해했다. 개천에서 놀던 시절을 빼고 무슨 고향 추억이 있으랴. 정지용도「향수」에서 ‘옛 이야기 지즐 대는... 실개천이...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울음을 우는 곳’을 읊은걸 보면 어린 나이에 결혼한 아내와 부모님을 두고 고향을 떠나 일본에 유학하면서도 어릴 때 놀던 실개천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이렇듯 고향은 아름답고 못 잊어 한다. 그러면서도 돌아가지 않는다. 아니 못 돌아가는 게 맞다. 이유야 많겠지만 그래도 돌아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이야 언제라도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돌아갈 곳도 오라는 사람도 없는 사람은 정말 딱하다. 가끔 그런 경우를 보고 가슴 아파했다. 유태인처럼 나라 없이 떠돌아다닌 디아스포라(diaspora) ‘실향인’의 슬픔을 누가 알랴.
미국에서 20여 년을 살면서 그런 아픔을 하소연하는 교포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내가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더니 모두가 전쟁 나는데 왜 돌아가느냐고 말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돌아갈 곳이 있으니 당신은 행복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만큼 복을 많이 타고 난 이는 많지 않다 싶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조상을 잘 만났기 때문이다. 사파문중의 11대 주사손으로 태어나 철들어서부터 사랑방에서 증조부와 조부의 사랑을 받고 유가(儒家)적 교육을 받아 품성을 바르게 익혔고, 사희에 나가 사는 법도를 배웠다. 그런 내가 늙어 솔밭으로 둘러쳐 있는 앞산 뒷산 계곡 속에 구중궁궐 같이 큰 몇 백 년쯤 됨직한 고택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마음을 씻고 몸도 씻으며 노후를 즐기고 있으니 이 모두가 조상 덕이 아니겠는가. 고산의 '오우가(五友歌)'를 부르고 싶은 심정 어찌 알랴. 누가 뭐라 해도 귀천은 백 번, 천 번 잘했다.
하기야 오늘날처럼 지구촌 시대에 살면서 꼭 고향을 떠올릴 필요가 없다. 고향을 잃고 못 가는 디아스포라의 삶이 보편화 되고 있는 게 또한 사실이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살면서도 끼리끼리 모여 그런 향수와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릴케는 실향인이라는 말을 즐겨 쓰면서 같은 혈통끼리, 같은 국적끼리, 같은 출생지끼리 모여 사는 뜨내기들을 대상으로 존재의 근원상실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한때 영등포일대가 전라도 사람들이, 청량리부근에는 경상도사람들이, 해방촌에는 월남한 이북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실향인의 향수를 달래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나는 가끔 혼자 고향에 간 사람을 본다. 좀 딱하다는 느낌이 든다. 평생 옆에서 잔소리를 해대던 마나님으로 부터 떨어져 나와 있으니, 잔소리가 없어 처음엔 편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기야 늦잠을 자도 되고 게으름을 피워도 바가지가 없어 평화로워 좋아 보인다. 이제 제대로 노후를 보내는가 싶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조금씩 긁어주는 잔소리가 그리워진다. 좀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늘 듣던 것을 들을 못 들을 땐 그리움으로 다가 오는 법이다. 얼마 못 가서 보따리를 싸 들고 마나님 치마폭으로 기어들어 간다.
귀향은 말이 쉽지 실천하기가 어렵다. 좀 건방진 말 같지만 유식하게 말하면 퇴계도 "참 앎과 실천이 함께 해야 도(道)에 이른다고 했다." 입 따로, 행동 따로의 설익은 귀촌이니 귀향이니 허튼 수작을 하지 말라는 경고다. 속된 말로 촌수를 제대로 짚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미 고향상실성에 빠져 게르하르트가 말한 천국(天國)이 어쩌면 우리가 가야할 영원한 고향이 아닌지 모른다. 그럼에도 연어가 모천에 와서 장렬한 죽음을 하듯 인간에게도 고향은 어머니의 자궁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을 뜻한다. 나는 연어처럼 모천으로 돌아와 비록 고독한 은둔자로 생활을 하지만 이래저래 편한 마음으로 보면 나만큼 행복한 은둔자도 없지 싶다. 이제 남은 것은 연어처럼 장렬한 죽음을 통해 게르하르트의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길만 남았다. 나의 귀천(歸川)은 연어의 모천(母川)인 셈이다.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연간사화집(詞華集) 2017. 27호’에서
'아름다운 詩,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쇠달에선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0) | 2018.01.05 |
---|---|
홀로 겨울 산사(山寺)에서....... (0) | 2017.12.21 |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0) | 2017.11.27 |
잠을 돈으로 사는 사람들 (0) | 2017.10.31 |
마음을 따르면 된다 (0) | 2017.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