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마음을 따르면 된다

송담(松潭) 2017. 10. 24. 05:48

 

마음을 따르면 된다 / 김용택중에서

 

 

< 1 >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단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늙어 죽을 때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느냐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은 늘 설렌다. 그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까와는 다른 지금을 만드는 사람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은 세상을 자세히 보는 사람이고 또 글을 쓰면 세상을 자세히 보게 된다. 그래야 자기가 하는 일을 자세히 보게 되고 그래야 자기가 하는 일을 잘하게 된다. 글은 자기가 하는 일을 도와준단다.

 

 아빠가 처음 책을 읽은 것은 스무 살 무렵이었지. 책을 읽으니 생각이 일어났다. 오랜 세월 일어나는 생각들을 썼더니, 어느 날 내가 시를 쓰고 있었어.

 

< 2 >

 

 모든 예술 작품들이 다 세상을 담고 있지만 그림은 모든 예술을 담고 있단다. 그림을 모르고 시를 쓰고, 시를 모르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연을 모르고 음악을 하는 것은 달빛이 넘치는 강물을 모르고 음악을 하는 것과 같지. 아침 강물과 저녁 강물을 모르고 서정시를 쓸 수 없다. 달빛이 부서지는 강물, 하얀 눈을 받아 들고 흐르는 강물, 하얀 눈이 내린 날 아침 검은 붓자국처럼 거칠게 휘돌아 가는 강물, 새들이 조용할 저물녘 어두워지는 강물을 차고 뛰어오르는 하얀 물고기들을 보지 못하고 서정을 말할 수 없다. 시를 모르고 음악을 모르고 그림을 모르고 요리를 할 수 없지.

 

가을 섬진강 

 

 

사진 출처: 섬진강 수묵화 / 송만규

 

 

 공부하지 않는 삶은 초라하고 가난하단다. 공부를 하면 무슨 일을 하든 가슴이 꽉 차지. 그 공부가 자신을 성숙시키고 성장시키기 때문이야. 공부는 희망이야. 공부가 희망이 되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다, 그런 나라가 좋은 나라야. 배운 것을 써먹고 풀어먹을 수 있는 나라가 희망의 나라다. 개인도 마찬가지지.

 

 햇살이 하는 일을 알고 바람이 하는 일을 아는 것, 물이 하는 일을 아는 것이 공부란다. 그래야 사람이 하는 일과 할 일을 알게 되니까. 스스로 책을 찾아 읽길 바란다.

 

< 3 >

 

 봄은 땅에서 올라오고 가을은 하늘에서 내려오네요. 발소리인가 하여 나가 보니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소리였습니다. 낙엽이 이렇게 반가운 소리를 낼 줄이야.

 

순천시 동천 2017.10.22

 

 

 

< 4 >

 

고요를 보고 살다

 

 민세야, 네가 불을 지르며 놀던 강변 억새가 올해는 더 무성하. 가을이 무르익었어. 깊어졌어. 앞산에 감들이 붉다. 해가 지면 바람도 자고, 맑은 강물이 산 빛으로 붉다. 바람이 없는 앞산과 강 같은 평화를 아빠는 좋아했지. 고요가 좋아.

 

고요한 산 아래 강가를 따라 걸으면 어딘가로 자꾸 흘러가는 물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여기가 어딘지 꿈만 같을 때가 있다. 모든 경계가 지워지고 풀과 나무들이, 논과 밭들이, 강물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집을 지어 나는 그런 평화를 얻고 싶단다. 너랑 엄마랑 민해랑 그리고 네 아들딸들이 태어나면 그 아이들과 그렇게 천천히 강물을 따라 걷고 싶어. 우리는 강물이 무엇을 하는지를 잘 알고 있으니까.

 

 자연이 말하는 것을 나는 충실히 받아쓰며 살고 싶단다. 네가 태어나 강물 소리를 들으며 자란 곳에서 말이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열어 내 안에 들어온 잡다한 것들을 다 몰아내고 풀과나무와 작은 벌레들이 내 안팎으로 넘나들게 할 줄 아는 고요를 보고 살았잖아.

 

 잠시였지만 어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외면하고 돌아앉아 강물을 바라보았다. 바람은 떠나고 강물이 내 안으로 들어와 흘러갔다. 그 강가에 억새가 하얗게 서서 조용했다. 삶이 저와 같다. 세상에 무슨 일이 또 있겠니?

민세야, 또 보자. 아침에 아빠가.

 

 

사진출처 : 북서풍라이프

 

< 5 >

 

 민세야, 늘 말하지만 모든 일들은 늘 당사자들이 더 생각을 많이 하고 더 걱정을 많이 하고 가닥을 잘 잡아간다. 너희들은 어른이다. 우리들은 너희들의 생각을 존중할 것이다. 두루 고려하고 염려하고 배려해나가길 바란다. 너그럽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솔이도 똑똑하고 화통해 보인다. 아주 좋은 성격을 갖고 있어 보인다. 우몽하고, 속 두고 딴생각하고 딴말하는 것을 우리 가족 모두 싫어하지 않니? 씩씩해 보인다. 엄마와 충분히 이야기하고 상의해가며 일을 해가길 바란다.

 

 우린 너무 좋다 엄마는 네가 장가간다는 게 그리 좋은지 실실 웃는다. 웃음을 감추지 못해. 같이 어디 가면서 몇 번이고 그렇게 좋아하며 실실 웃는다. “우리 민세 장가가는 거지하면서 말이다.

민세야, 여긴 오늘 비가 왔다. 오랜만에 빗소리를 들었다. 반가웠다. 또 보자 안녕.

                                                                                                            아빠가

 

 솔이를 금쪽같이 생각하거라.

 민세야, 짜식! 사랑이 그리 좋냐? 잘 가꾸어야 한다. 사랑은 꽃밭 같은 거야. 돌보지 않으면 금방 잡풀들이 나서 꽃들을 위협한다. 돌보지 않으면 금방 꽃들이 시들어버려. 들여다보아야 해. 자꾸 봐줘야 해. 물이 부족한지 잡초가 많은지 늘 마음이 가고 손이 가야 해. 그래야 늘 새로운 꽃송이가 피어난다. 알았지.

 

 오늘은 시골 간다. 돌담을 조금 높였더니 집이 아주 근사해졌다. 솔이는 좋겠다. 민세도 좋겠다. 사랑의 꽃밭을 가져서. 안녕.

등 뒤가 밝아진 아침에 아빠가

 

 언젠가 아빠가 너에게 말한 적이 있어. 너는 이제 항구를 떠난 배라고, 닻줄을 풀고 스스로 망망대해를 해쳐나가는 배라고. 풍랑을 이기며 저 넓고 파란 바다로 너는 떠나가야 한다고. 이제 너는 스스로 홀로 떠나가는 배가 되었다. 때로 힘들고 좌절하고 절망할 것이다.

 

 할머니가 늘 힘들어하는 나에게 말했었단다. 한 달이 크면 한달이 작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산을 넘었더니, 또 산이더라. 그런 일이 없으면 누가 인생을 인생이라고 하겠니. 그 고난과 고통들을 자기 것으로 안고 가슴에 묻고 간직하며 사람들은 또 산을 오른다. 그게 인생이다.

 

 민세야, 마음이 따듯한 내 아들 사랑하는 내 아들, 잘 자라주어서 고맙다. 다시 멀고 먼 길, 너는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들며 살았다. 너랑 솔이가 우리 집에 들어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마.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한다. 솔이 민세를 생각하니, 가을이 환하구나. 하얀 쑥부쟁이 꽃을 한 아름 네 가슴에 안긴다.

새벽 영원한 고향 진메 우리 집에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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