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공(犬公)들의 이야기
옆집 토부다원 사장님 내외는 동물애호가이다. 고양이 20마리 정도, 개(犬)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동물이 죽으면 눈물까지 흘린다. 얼마 전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고 남겨진 주먹만한 고양이 새끼를 발견하고 그 놈을 살리기 위해서 두 분이 우유를 먹이고 저녁에는 품에 안고 자면서 살려내려고 온갖 정성을 다했다. 사모님께서는 날씨가 쌀쌀해지면 새끼 고양이가 병들까봐 가슴에 품고 다니셨다. 그런데 그렇게 정성을 다한 고양이가 결국 죽은 것이다. 사장님은 기골이 장대한 체구인데 큰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새끼고양이가 죽었다고 목매인 듯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았다. 정말 동물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 분들이다.
사장님은 평생 개를 키우셨는데 1년 전에 15년 키운 개가 노화로 죽자 두 내외가 매우 슬퍼했고, 허전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새끼 한 마리를 새로 입양했다. 입양한 개의 이름은 영리하다고 해서 ‘천재’다. 그 녀석은 주인을 잘 만나 사료를 먹지 않고 주로 계란후라이를 주식으로 먹고 수시로 닭 돼지 소고기까지 먹는다. 주인으로부터 수시로 스킨십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고 있기 때문에 옆에서 지켜 본 우리 부부는 “저 개는 사람으로 치면 상위 1%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1년 전 천재가 어린 새끼로 막 입양한 후, 그분들이 서울을 가시게 되어 집사람과 내가 하루 관리를 해 주었는데 그 후 천재는 집사람만 보면 뛰어오르고 몸을 핥고 난리를 친다. 나한테는 뛰어오르려고 하면 제재를 하기 때문에 그냥 졸졸 따라다니기만 한다.
우리 마을은 20여 가구가 사는데 대부분 개를 키우고 있다. 우리 집도 전원으로 이사 올 때 풍산개 잡종 한 마리를 키웠는데 내가 개를 좋아하지 않고, 개가 성질이 사나운 종(種)이라 묶은 줄이 풀리면 이웃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키우기를 중도 포기하고 다른 집으로 보냈다. 집사람은 개를 좋아하지만 나는 동물에 대해서는 너무 ‘냉혈’이다. 옆집 ‘천재’가 그렇게 나를 따라다녀도 손으로 한 번 만져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천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집에 머물다 가고 외부에서 모르는 사람이 오면 짖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은 “왜 저 개가 남의 집에서 짖고 있느냐?”고 궁금해 한다.
내가 개를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든 옆집 개 ‘천재’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천재’ 신변에 큰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동네에서 매놓지 않고 풀어서 키운 개가 두 마리 있는데 두 마리다 수컷이다. ‘천재’는 아직 1년뿐 안 되었고, 또 다른 수컷 ‘금동이’이라는 개는 10년 정도 된 진돗개다. ‘금동이’는 우리 동네 유명한 카사노바로 동네 암컷들은 거의가 ‘금동이’ 씨를 받았다. 암컷 개를 키운 집에서 아무리 단속을 해도 ‘금동이’는 야심한 밤에 나타나 동네 암컷들을 평정한다. 개 주인들에게 그야말로 “용용 몰랐지?”다.
이렇게 ‘금동이’는 그동안 동네 처자개들을 독점하다시피 했는데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 ‘독점지위’가 위협받게 된 상황이 되었다. 옆집 수컷 ‘천재’는 아직 미소년이지만 주인이 하도 잘 먹여서 등치가 크고 털에 윤기가 번질번질하다. 미소년 ‘천재’는 늙은 ‘금동이’에게 혜성같이 나타난 경쟁자이다. 더군다나 미소년 ‘천재’는 부잣집에서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호강하고 자라왔을 뿐만 아니라, 살고 있는 집 정원은 또 얼마나 넓고 멋진가. 동티모르 대통령이 한국에 왔을 때 자고 간 집이 바로 그 집 ‘토부다원’아닌가. 그야말로 ‘천재’는 명문귀족의 자제와 다를 바 아니다. 그러나 ‘금동이’는 주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떠돌이 신세이고 자랑할 것은 오직 늙어서도 그칠 줄 모르는 정력, 그리고 몸에 붙어있는 강력한 무기! 그것 뿐이다.
그런데 며칠 전 동네 암컷 개 한 마리가 유혹의 체액을 바람에 실어 사방으로 날리면서 동네 수컷들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드디어 미소년 ‘천재’가 온실에서 살다가 담을 넘어 거친 광야를 향한다.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도 나이만 적을 뿐, 그것은 제법 튼튼하게 성장하지 않았는가? 가자, 사랑을 위하여!”
그런데 왠 일인가? 그님의 문전에 늙은 ‘금동이’이가 호시탐탐 님을 노리고 있지 않는가. 불가피하게 전투가 벌어졌고 서로 물고 물리고 했지만 처녀출전인 ‘천재’와 백전노장인 ‘금동이’와의 싸움은 늙은 ‘금동이’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동물들의 세계에도 질투는 사랑의 꽃인가, 저주인가. 평소 부잣집에서 어린양 부리며 사는 ‘천재’에 대해 가뜩이나 질투를 느꼈던 ‘금동이’는 눈에 가시 같은 ‘천재’를 응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대낮에 미소년 ‘천재’가 사는 집으로 무작정 들어가 한가히 쉬면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사랑의 경쟁자 ‘천재’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천재는 큰 상처를 입고 다리를 절뚝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금동이’의 보복은 무서울 정도였다. ‘사랑이 살인을 부른다.’라는 말은 동물의 세계에도 분명했다.
‘천재’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테러를 당한 것을 알게 된 주인은 자신의 개를 애지중지 자식같이 키운 탓에 분노가 폭발했고 ‘금동이’주인에게 연락하여 동네에서 추방할 것을 요구했다. ‘금동이’ 주인은 그동안 동네 여러 집에서 항의를 받았던 터라 결국 ‘금동이’를 먼 곳으로 보냈다. 짐작이지만 개장수에게 팔려 죽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금동이’는 그동안 동네의 너무 많은 암컷들을 건들며 건달로 살아왔으나 결국 권세가의 개를 잘 못 건드려 죽음을 재촉한 것 같다. 하필이면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다. 용의 거꾸로 난 비늘에 찔리면 오직 죽음이다. 우리 동네 풍운아 희대의 카사노바 ‘금동이’는 결국 ‘역린(逆鱗)’을 몰랐던 것이다.
이 사건이 있는 후 옆집 개 ‘천재’는 트라우마를 앓았다. 테러를 당한 후 며칠간 식음을 전폐했고 몸무게가 쭉 빠졌다. 항생제를 며칠 맞고 상처가 나아 절뚝거린 다리가 정상이 되었고 주인이 잘 간호한 탓에 몸은 회복되었다. 그러나 정신적 충격은 컸던 모양이다. 우리 집에 오면 전에는 잠깐 놀다가 자기 집으로 곧장 갔는데 요즘은 몇 시간을 있다가고 우리 집에 오면 데크에서 또는 내가 밖에서 쉬는 장소 의자 옆에서 한참을 같이 앉아 있거나 잠을 자고 가기도 한다. 자기 집에 가면 호강이지만 테러를 당했던 장소의 기억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이상한 것은 한 번도 쓰다듬어 준 적이 없는 ‘천재’는 나를 ‘안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일까? 동물도 감정이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동물에 ‘냉혈’인 내가 어쩔 수 없이 ‘천재’와 교감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내 곁에 다가온 ‘천재’에게 나는 조용히 속삭인다. “너는 ‘금동이’같이 여자를 너무 밝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 동네가 너의 독무대가 되었고 네가 정상에 올랐으나 앞으로 너는 여자를 두고 싸우지 마라!”
천재와 함께 2015년
* 후기(?) : 추방된 진돗개 ‘금동이’에 대하여
위 글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람으로 따지면 상위 1%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천재’를 주인공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금동이’가 소외되어 약자의 입장보다는 강자의 입장이 부각되었다.
사실 ‘금동이’를 키운 주인은 ‘금동이’가 족보 있는 가문의 후손이라며 자랑스럽게 여긴 개다. 다만 풀어서 키운 탓에 동네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한 가운데 '천재'와의 ‘잘못된 전쟁’을 치러 추방되기에 이르렀다.
이야기가 '금동이'보다는 '천재'를 중심으로 전개된 이유는 바로 ‘관계’의 문제이다. ‘천재’는 나와 ‘관계’가 있었고, ‘금동이’와 나는 별 ‘관계가 없는’것의 차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나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A가 B를 잘 알기 위해서는 B가 A를 잘 알아야 합니다.
잘 안다는 것은 서로 ‘관계’가 있어야 됩니다.
관계 없는 사람에게 자기를 정직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노래 가사에도 있습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대단히 철학적인 가사입니다.
잘 알기 위해서는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신영복 / 마지막 강의 ‘담론’중에서
하지만 ‘금동이’에게 측은한 생각이 든다. 노장 '금동이'가 어린 ‘천재’를 무차별적으로 응징하지 않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 윈윈(Win Win)했으면 좋았을 텐데. 독점(獨占)이 아닌 과점(寡占)체제로!
부디, '금동이'가 예측과는 달리 개장수에게 팔려가 죽지 않고, 꼭 부자집이 아니더라도 어느 평범한 집에서 사랑받고 장수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때 그 시절 미곡마을 그녀들과 나눈 황홀한 시간을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으면 한다.
< 2015.9.29 >
토부 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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