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정상현 선생님에 대하여
결혼하여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한 곳에서 50년 이상을 거주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더군다나 아파트라는 편리하고 돈이 되는 주거공간에 유혹되지 않고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고향땅 단독주택에서 생의 대부분을 사는 것도 극히 예외적이다. 그분이 바로 전남 보성군 보성읍 쾌상리 평촌마을 남강 정상현 선생님이시다. 남강 선생님께서는 지금처럼 상위직 인프레가 없던 시절, 전남도청, 나주시청, 보성군청 등 자치단체에서 굵직한 업적들을 남기시고 서기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마치신 후, 지금은 고향 보성에서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실력을 재능기부하시면서 지역사회의 원로로서 존경받으며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멋진 은발에 아직도 홍조의 건강한 얼굴색과 환한 미소, 주변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후덕(厚德)함, 자랑거리가 많음에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겸양(謙讓), 이렇게 ‘학식과 덕망’을 구비한 지성인이시다. 여기에 금상첨화로 애잔한 감수성과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미적(美的) 감각까지 갖추었고, 자녀들 역시 장남은 의사(전문의), 딸은 교사 등 모두가 착하게 성장하여 각자의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루고 있으니 세상에 이처럼 다복(多福)한 가정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오늘은 그 복(福)의 근원지를 탐사한다.
예전에 남강 선생님 댁을 몇 번 들렸지만 집과 정원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지라 그냥 ‘고풍스러운 한옥에 아담한 정원’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내가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달랐다. 남강 선생님의 주택에 대하여는 건축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한옥의 건축양식이나 건축물의 곡선 등 미학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지만 건축당시 ‘고급주택’이었음은 확인할 수 있고 본체 건물은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한옥은 대부분 개량형으로 가서 보면 유명화가의 그림 위에 누군가가 덧칠을 한 것처럼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그런데 남강 선생님 한옥은 느낌이 다르다. 부(富)를 자랑하지도 않고 위압적(威壓的)이지도 않으며 품격을 갖추었으되 묵직하면서 단아하다. 대문에 들어서면 그 옛날 사대부를 꿈꾸는 선비의 독경소리가 조용히 들리는 듯하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선비가 따스한 녹차를 마시며 회한(悔恨)에 젖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남강 선생님 집에는 추사 완당 김정희(1786~1856)의 행서 글씨를 목판에 새긴 ‘碧澗照月(벽간조월)’ 현판이 걸려있는데 해석하면 ‘푸른빛 맑은 시내에 달빛이 내리다’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럴 것이다. 낮의 밀도 높은 녹음이 밤늦게까지 뜰 안 여기저기에 푸른 물처럼 흐르는데 여기에 내려앉은 교교한 달빛이라! 이곳이 바로 남강 선생님의 시적(詩的) 서정(敍情)이 발원되고 복된 가정의 서사(敍事)가 시작되는 땅이다. 또한 선생님 내외가 거주하는 안방을 ‘길상실(吉祥室)’하여 부부 금슬을 도모하고 자식을 양육하였으니 그 상서로운 기운이 어찌 둥지 안에 가득하지 않았을까.
정원의 앞과 뒤뜰에 수십 년 나이 든 소나무는 명품이다. 남강 선생님의 손길에 의해 인공을 가미했으되 자연 그대로의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보이고 있어 왜 요즘 여자들이 성형을 통해 높은 자존감을 확보하고 생을 긍정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 바쁜 공직생활 중에 어떻게 조경 자격증을 따고 연금술사의 손을 갖게 되셨는지 경이롭다. 아름다운 정원에는 석탑과 석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선생님께서 직접 사찰을 찾아가 그중에서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보물급 조형물을 직접 촬영하여 숙련된 석공에게 맡긴 것이다. 석탑과 석등도 5남매의 숫자에 맞춰 땅의 기운을 보완하고 자식처럼 바라보며 사셨을 것인데 정갈하신 사모님께서는 새벽에 찬물 떠서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셨을 모습 또한 상상이 어렵지 않다. 곱게 늙어가는 사모님의 모습에서는 좋은 집안의 규수였음을 쉽게 추측해 볼 수 있고, 남들에게 자식자랑을 할만한 조건임에도 한 번도 자식자랑을 하시지 않는 것을 보면 그 품격의 높이를 알 수 있다.
이처럼 남강선생님의 집과 정원은 그 안에서 선생님의 사상과 가치관이 응축되고 곰삭혀져 숙성되는 장소로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아울러 이러한 가(家)의 정신이 오랜 시간을 통과함으로써 역사성을 갖게 되고 가족의 전통과 문화가 된다. 이러한 정신문화는 자아의 정체성을 고양시킬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와 후손들에게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오래도록 남게 될 것이다.
(2017.6.21)
(2017.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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