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아버지
오랜만에 예전 동료들을 만나 늦도록 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서 들어온 아버지가 거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삼 남매 이름을 부르며 잠을 깨웠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느라 아버지가 오신 줄 몰랐던 막내와 잠들어 있던 자매가 뒤늦게 나와 인사했고, 아버지는 지갑을 꺼내 집히는 대로 돈과 카드를 자식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하품을 하며 방에서 나온 어머니는 왜 안 하던 짓을 해서 식구들을 다 깨우느냐고 아버지를 타박했다.
“오늘 딱 나가 보니까 내가 제일 괜찮더라 이거야, 이 정도면 내 인생 성공했다! 고생했다! 그동안 잘 살았다!"
중국과 무역을 하겠다던 동료는 퇴직금을 몽땅 날렸고, 여전히 공무원인 동료도, 아버지처럼 퇴직 후 개인 사업을 하는 동료도 수입이 고만고만하더란다. 아버지가 벌이도 가장 좋고 집도 가장 넓었다. 게다가 딸 하나는 선생님이고, 또 하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 다니고, 마지막으로 든든한 아들까지 두었다며 다들 부러워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한껏 어깨를 뒤로 젖히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자 어머니가 팔짱을 끼며 비웃었다.
“죽집도 내가 하자고 했고, 아파트도 내가 샀어. 애들은 지들이 알아서 잘 큰 거고, 당신 인생 이 정도면 성공한 건 맞는데, 그거 다 당신 공 아니니까 나랑 애들한테 잘하셔. 술 냄새 나니까 오늘은 거실에서 자고.”
“그럼 그럼! 절반은 당신 공이제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오미숙 여사님!"
“절반 좋아하네. 못해도 7대 3이거든? 내가 7, 당신이 3"
이미지 출처 : 조선일보 2017.3.27
어머니는 다시 길게 하품을 하며 베개와 이불을 거실에 던져 줬고,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같이 자자고 했지만 아들도 술 냄새가 난다고 거절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기분 좋은지 씻지도 않은 채 이불을 돌돌 말고 거실 한가운데 쓰러지듯 누웠고 곧 코를 골았다.
조남주 / ‘82년생 김지영’중에서
* 위 글 제목 ‘기분 좋은 아버지’는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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