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내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송담(松潭) 2017. 9. 10. 18:48

 

 

내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을 것

 

 

 

 대학을 갓 졸업했을 무렵, 나는 한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내가 처음으로 배정된 팀에서 만난 주임은

 나를 하인처럼 대했다고 할까? 갑질이 적당할 듯.

 자기 앞에 있는 모니터를 10cm 옮기는 것도 나를 시켰고,

 사소한 실수만 해도 나 엿 먹여?"라며 면박을 줬다.

 사회생활이 처음이었고,

 모든 게 평가 대상이었던 인턴 신분의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저 이 집단의 가장 아래 놓여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호모인턴스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인턴십을 마치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잠자리에 드는데 갑자기 그 선배 생각에 분한 마음이 일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건, 그녀가 나에게 한 행동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표정 한 번 구기지 않은 나 자신이었다.

 

 큰 권한이 있던 것도 아닌데

 대단한 권력이라도 지닌 듯 구는 그녀에게

 나는 단 한번도 꿈틀하지 못했고,

 그런 나의 태도는 그녀가 나를 점점 더 하대하게 만들었다.

 

 좀 다른 경우긴 하지만,

 민주화 운동을 하다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이

 과거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이유는 그때 겪었던 고통이 아니라

 고문관에게 잘 보이려 했던 자신의 비굴함이라 했다.

 

 물론 그것이 우리의 잘못은 아니지만 사람의 자존감에 치명상을 끼치는 건

 부당한 대우 자체보다 부당한 대우에 굴복한 자기 자신인 거다.

 

 그러니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은 이에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이에게, 친절하려 애쓰지 말자.

 상황을 바꿀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들에게 비굴해지지는 말자.

 

 저열한 인간들로부터 스스로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에겐 최소한의 저항이 필요하다.

 

 

 

 

 

 

 

 

 

인생에서 숫자를 지울 것

 

 

 인터넷에 떠돌았던 나라별 중산층의 기준이다.

 

 영국(옥스포드대에서 제시한 중산층의 조건)

 

 - 페어플레이를 할 것

 -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 나만의 독선을 지니지 말 것

 -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프랑스(퐁피두 대통령이'삶의 질'에서 정한 중산층의 기준)

 

 - 외국어를 하나 정도 구사하여 폭넓은 세계 경험을 갖출 것

 - 한 가지 이상의 스포츠를 즐기거나 하나 이상의 악기를 다룰 것

 -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별미 하나 정도는 만들어 손님을 대접할 것

 - 사회 봉사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할 것

 -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꾸짖을 수 있을 것

 

 

 대한민국(연봉정보사이트 직장인 대상 설문)

 

 - 부채 없는 아파트 평수 30

 -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 자동차는 2,000CC급 중형차

 -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 해외여행은 1년에 몇 번

 

 영국, 프랑스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기준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것.

 그건 바로 숫자다.

 

 한번은 인터넷 서핑을 하다

 ‘나의 결혼 가능 점수를 알려준다는 배너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사주 사이트인가 했는데 그건 결혼정보회사 사이트였다.

 나이, , 몸무게, 자산 액수, 연봉 등 수많은 숫자를 입력하고 나면

 소고기처럼 등급을 매겨 나의 결혼 기능 점수도 알려준다는 거였다.

 이게 진정한 의미의 한국형 알파고가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무엇이든 숫자로 책정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나 자신의 값어치를 매기는 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세워진 숫자의 삶 속에서

 개인은 이력서에 쓸 숫자들을 위해 분투하고,

 집의 평수로 관계에 금을 긋고,

 파업이나 집회가 있으면 어떤 가치의 충돌인지가 아니라

 얼마의 돈을 손해보고 있는지를 헤드라인으로 읽는다.

 그야말로 가치는 잊은 채 서로의 값어치만 묻는 숫자의 삶이다.

 

 그런데 숫자라는 건

 언제나 비교하기 쉽고 서열을 매기기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세모와 동그라미를 비교하여 서열을 매길 수는 없지만

 12를 비교하여 서열을 매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결국, 숫자의 삶이란

 쉴 새 없이 비교되며 서열이 매겨지는 삶인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낮은 값어치가 매겨질까 안절부절 못하고

 자신의 위치와 서열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그렇다면 삶의 모든 것을 숫자로 측정할 수 있을까?

 

 아이큐가 지혜를 측정할 수 없고,

 친구의 숫자가 관계의 깊이를 증명할 수 없으며,

 집의 평수가 가족의 화목함을 보장할 수 없고,

 연봉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할 수는 없다.

 진정한 가치는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우월한 존재가 아닌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삶에서 숫자를 지워야 할 것이다.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가 담을 수 없는 것들에 있다.

 

  김수현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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