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고통에서 해방되는 공감

송담(松潭) 2017. 6. 15. 15:42

 

 

고통에서 해방되는 공감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겪는 대부분의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다. 탄생 자체도 고통이지만 사람이 걷고 언어를 배우고 4계절을 극복하면서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모든 맞닥뜨린 상황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적은면 적은대로 많이 가지면 많이 가진대로, 원치 않는 고통이 삶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렇다면 고통에는 그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일까? 폴 브랜드라는 영국 의사가 인도의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어냈다. 한센병은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온 몸의 살이 썩어나가는 병으로 무서운 전염병같이 느껴져 사람들이 꺼려하지만, 정작 이 병은 전염성이 강한 병이 아니고 살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이 병의 중심 증상이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한센병에 걸리면 팔과 다리 그리고 온 몸의 신경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로 인해 주의력이 떨어지고 쉽게 상처가 생기는데, 상처가 생겨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니 대처를 잘못하게 되고 2~3차 감염으로 염증과 괴사가 발생하게 된다. 이래서 쉽게 신체가 훼손된다. 고통이 사라진 세계는 고통 없는 환상의 세계이거나 축복이 아니라 가장 두려운 공포 그 자체인 것이다.

 

 ‘왜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가?’라는 질문이 많다. 이 말은 선한 사람은 고통 받지 않고 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과 고통은 나쁘다는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마도 고통이란 것이 괴로움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해롤드 쿠쉬너는 이 질문에 대한 책을 쓰면서 자신의 경험을 토로한다. 그는 성실하고 주변으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성직자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자신의 첫 아들 아론이 3개월 되었을 때 프로제리아란 희귀병 진단을 받는다. 이 병은 조로증으로써 3개월 밖에 안 된 아이가 열 살 이상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끔직한 고통은 그의 시선을 조금씩 바꾸어주었는데, 그의 고통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500명이 넘는 자신의 교회 구성원들 모두의 삶을 다시금 바라보게 했고, 그들 모두가 짊어진 고통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비로소 그는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렇다. 고통에는 반드시 뜻이 있고, 그 고통이 나를 성장시킨다. 심지어는 이런 고통의 성장 기능을 고통의 법칙이라 할 수 있다.

 

 고통은 치료나 구원의 대상이 아닌 듯하다. 오직 공감에 의해서만 위로 받을 수 있고 그 위로에 의해서 치유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듯하다. 그러면 공감은 뭐냐. 공감이라는 말 이전에는 동정(同情,empathy)라는 말을 썼다. 동정은 수동적인 감정의 느낌인데, 공감(共感, empathy)은 근대 심리학이 마음의 이론 theory of mind’을 정립한 1909년 이후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공감의 감(, -pathy)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것을 말한다. 수동적이기보다는 적극적인 참여를 의미하고 관찰자가 기꺼이 다른 사람의 경험에 참여한다. 나아가 그들의 경험에 대한 느낌을 공유한다. 이게 우리의 마음이라면, 왜 우리가 고통스런 현장이나 장면을 피하지 않고 그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껴안는지 이해가 간다. 그들의 고통 속에서 고통을 함께 느끼며, 고통당하는 사람을 구해주고 의 고통에서도 해방된다.

 

 박명우/‘사람, 삶을 안다는 것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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