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고, 물어야 할 질문

송담(松潭) 2016. 11. 7. 18:20

 

 

묻지 않을 수 없고, 물어야 할 질문

 

 

고독

 

 

 

 어떤 철학자는 죽음이 내 삶 속에 둥지를 틀고 있을 뿐 아니라 손님이 나를 찾아 마중 나오듯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의 공간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그 죽음의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물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고 있다. 앞으로 2년 정도의 일은 책임 맡고 있으나 그러고도 여백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고 물어야 한다. 그래서 두 가지 과제를 예상하고 있다. 나의 100세 인생에서 꼭 남기고 싶었던 나름대로의 마음과 정신적 유산을 고백하자는 뜻이다. 강연을 통해서 가능하다면 더욱 좋고, 그게 안 되면 이야기라도 남기고 싶다. 그러고도 정신적 여유가 허락된다면 간간이 떠오르는 삶의 단상들을 묶어 작은 한 권의 책이라도 남겼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그런 여유를 갖지 못했던 때문이다. 그런 일들이 어느 정도의 객관적 가치를 갖고 있는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은 그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 친분이 있던 두 사람이 있다. 나보다 두세 살 연하이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사회적 공헌도 컸으나 지금은 치매로 아무 일도 못하고 있다. 신체적으로는 건전한 셈이지만 정신적 기능을 상실한 지 몇 해가 지났다. 다른 한 분도 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정신적 기능은 크게 변화가 없다. 기억력도 그대로이고 사고력도 크게 약회되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신체적 건강이 먼저 쇠퇴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하루의 대부분을 침상과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다.

 

 나에게도 그런 때가 곧 찾아올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때가 오기 전까지 시간의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는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찾아오게 되어 있는 인생의 마라톤 경기의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완주할 것인가를 함께 물어보자는 것이다. 과거의 연장일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위한 출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선택과 결단인 것은 사실이다. 가수가 부를 수 있는 마지막 노래 같을 수도 있다. 성직자들이 남겨주고 싶은 마지막 설교와 같을 수도 있다. 그 메아리는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뒤늦게 지금 그런 물음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선각자들은 50이나 60대 이후부터 그런 실존적 결정을 내릴 수 있었기에 역사 건설의 주춧돌을 놓았던 것이다. 인생의 나이는 길이보다 의미와 내용에서 평가되는 것이다. 누가 오래 살았는가를 묻기보다는 무엇을 남겨주었는가를 묻는 것이 역사이다.

 

 김형석 / ‘백년을 살다보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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