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이별의 목록

송담(松潭) 2016. 11. 27. 19:07

 

이별의 목록

 

 

 

 

 

 

 

 왜 우리는 사랑하는 모든 것과 작별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언제나 이별하는 것일까. 이별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있기나 할까. 그 이별하는 것들의 목록을 적어보면 그곳엔 무엇이 적혀 있을까. 흐릿하게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집과 동네, 자주 놀던 개울, 그 풍경들, 아이들 없는 운동장, 그곳에 내리던 노을,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전학 간 친구, 혹은 내가 전학 가며 헤어져야 했던 단짝 친구, 엄마 없던 집에서 항상 반겨주던 강아지,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던 친구, 되찾을 수 없는 그런 편지들, 사랑이라는 말을 세상에 처음으로 발화하게 했던 그 사람, 혹은 그 사랑, 낯선 도시의 어느 골목에서 처음 만나고 다시 그곳에서 헤어진 사람, 그때 찍은 한 장의 사진, 그때 내리던 비, 그때 불던 바람, 말이 없던 할아버지와 어린 나를 예뻐하던 할머니, 그 어린 시절의 나, 그때의 목소리, 그때의 소망, 그때의 슬픔, 그리고 언젠가 그 이별의 목록이 될 나 자신... 수많은 흑백의 추억.

 

 얼마든지, 온종일 채워 내려갈 수 있는 이 목록들, 왜 우리는 이별하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일까. 차라리 사는 일은 이별하는 일일까. 오래 살수록 이별의 목록은 길어지고 그 슬픔도 커지는 것일까. 그것을 알기까지 꽤 에둘러 오랜 시간의 가장자리를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제와 이별했다. 오늘을 처음 맞이한 오늘과 이별한다. 내일도 오늘과 이별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일하게 자명한 이 진실을 알지 못한다. 이 세상과의 만남이 언제나 지속될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삶을 어떤 경쟁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은 오늘도 이기기 위해 애쓰고 이겨서 기뻐한다. 하지만 그도 언젠가 결국 진다는 사실을 모를까. 아니면 외면하는 것일까. 세상을 승패로 갈리어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죽음이라 불리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패배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약육강식, 자연도태란 과학적 허명을 쓰고 경쟁과 승패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예정된 패배 속에서 사는 셈이다. 하지만 삶이 이기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니라면 죽음은 꼭 지는 것만은 아닐 테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 작별을 하며 한두 개의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때론 그 슬픔을 한두 개씩 버리거나 잊으면서 살아간다.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에둘러 왔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하는 건 무척 슬픈 일이다. 허나 삶은 긴 이별의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신과 나는 이별했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 빠르고 늦은 시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우린 모두 작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 말을 통해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섣부른 위로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이별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늘도 우리는 많은 것과 이별하며 살고 있고, 또 앞으로 살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면, 그렇게라도 하면, 당신과의 이별이 조금은 삶의 한순간으로, 삶의 한 과정으로, 작별의 한 목록으로 적힐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당신의 이름, 당신의 존재, 당신의 냄새가 수많은 이별의 목록에 놓인다면, 그렇게 놓인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오늘 나를 스쳐 떠나간 따스한 바람 아래의 목록에 당신을 적을 수 있다면, 이제 나는 아주 잠깐 지구 위를 걷는 동물, 남은 시간 동안 다시 하루하루 작별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안바다/ ‘사랑에 대한 어떤 생각중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어감에 대하여  (0) 2017.02.22
무너질 동상을 세우는 사람들  (0) 2017.01.16
인생의 황금기는  (0) 2016.11.13
묻지 않을 수 없고, 물어야 할 질문  (0) 2016.11.07
어떻게 죽을 것인가  (0) 201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