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무너질 동상을 세우는 사람들

송담(松潭) 2017. 1. 16. 16:12

 

 

무너질 동상을 세우는 사람들

 

 

 살아 있을 때도 사후에도 자신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인간의 인정 투쟁은 참으로 집요하다. 그런데 생전에 많은 업적을 쌓고도 죽음에 이르러 자신의 자취를 드러내지 말 것을 유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1980년 입적하신 운허 스님이다.

 

 스님은 동국역경원을 세우고 팔만대장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불교 대중화의 초석을 다졌다. 스님의 한글 사랑은 남달랐다. 자신이 머물던 남양주 봉선사 대웅전의 현판을 한자 대신 큰법당으로 바꾸었다. 평생을 검소하고 담백하게 사신 스님은 1970년대 초 문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서를 미리 공지했다. “장례는 문도장으로 간단하게 3일장으로 하라. 사리를 수습하지 말라. 대종사라 칭하지 말고 법사라고 하라. 마음 속이는 수행자가 되지 말라. 사후에 문집을 간행하지 말라.” 진정한 수행자는 생전에는 움켜쥘 것이 없어야 하고 사후에는 남겨질 것이 없어야 함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운허 스님을 모시고 감화를 받은 법정 스님의 장례도 조촐했다. 위패는 비구 법정’, 단 한 줄이었다. 관과 상여도 없었고, 유언에 따라 생전에 낸 책도 모두 절판되었다.

 

 고려 말 나옹 선사는 인생을 이렇게 노래했다.

 

태어남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

하늘의 구름은 영원히 머물지 않아라.

나고 죽는 인생사가 그러하네.”

 

살아서는 부끄럼 없이 철저하게 자신을 연소하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생전에 남겼던 이름과 기억마저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 진정한 열반이다

 

(...생략...)

 

 지난해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광화문에 동상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은 심산이었을까. 국정교과서와 동상으로 반신반인의 경지로 우상화하려는 뻔한 속셈이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왜 역사는 어김없이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오는가

 

 석가모니 시대에 박칼리라는 제자가 있었다. 불치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던 그는 죽기 전에 스승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부처님이 이 말을 전해 듣고 찾아왔다.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받은 박칼리는 마지막으로 스승에게 큰절로 예를 올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말했다. “그만두어라 박칼리야.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내 몸에 예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는 자요, 나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이 나를 예배하는 것이다.” 교단의 후계자도 정하지 않고 절대적 교조이기를 거부한 석가모니의 입멸 후 5백 년 동안 불교 교단에는 불상이 없었다. 제자들은 형상보다는 가르침과 정신을 의지처로 삼은 것이다

 

제왕적 권위를 자랑하던 레닌, 스탈린, 후세인, 차우셰스쿠의 동상은 일시에 무너졌다. 무너지는 것들이 어찌 동상뿐이겠는가. 한 시대가 조작하고 세뇌한 낡은 권위주의와 함께 맹목적 추종과 의존의 표상인 우상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게 어디 있으랴. 인생의 마지막 옷에는 주머니가 없는데.

 

법인 스님 / 대흥사 일지암 주지

(2017.1.14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무너질 동상을 세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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