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송담(松潭) 2016. 6. 18. 21:49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산길을 걷다가 밧줄이었는데 뱀인 줄 알고 놀라는 사건을 생각해 보자. 먼저 밧줄을 뱀으로 본 관점은 착각이다. 즉 밧줄(사물)인데 뱀(이미지)으로 본 것이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뱀을 밧줄로 보지 않고 뱀으로 봤는데 놀란 것은 어떨까? 이것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착각이다. 이것은 사물을 이미지로 본 것과는 달리, (사물)을 뱀(이데아)으로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밧줄을 뱀으로 본 게 아니라, 뱀을 뱀으로 보고 놀라는 게 더 근본적으로 보인다. 그것은 뱀을 동일성 혹은 객관화시키는 작업 이후에나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니까. 가령, 밧줄을 뱀으로 보는 착각은 쉽게 발견되고 교정도 쉽다. 하지만 뱀을 뱀으로 보고 놀라는 것은 교정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착각의 뿌리가 깊고 튼튼해서 그게 제대로 된 인식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이미 착각을 한 꺼풀 걷어 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가령 자신과는 정치적 성향(따져보면 정치적 성향도 아님)이 다른 사람을 혐오하여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게 그것이다. 그건 착각이 아니라 굳은 신념에서 나온 것인데 뱀에 대한 초월적 이데아를 갖게 된 이후 모든 뱀은 무서움이 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원효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알다시피 그는 간밤에 마셨던 시원한 물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골바가지 속에 있는 더러운 물이라는 것을 알고 큰 깨달음을 얻어 유학길에서 돌아온다. 하지만 단지 자신이 마신 물이 시원함에서 더러움으로 바뀐 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도 중요한 깨달음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부여했던 의미, 즉 시원함과 더러움에 대한 것일 것이다. 과연 시원함이란 무엇이며 더러움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그것은 감각에 대하여 이데아를 상정하는 것이었다. 뱀을 보고 놀란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하여 자신이 뱀을 보고 놀란 것은 제대로 된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이때 뱀은 놀라게 할 만한 그 무엇인가를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존재로 취급된다. 그러므로 밧줄을 뱀으로 착각한 것보다 뱀을 무서운뱀으로 보는 게 더 근본적인 착각이다.

 

 그렇다면 뱀을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 뱀은 뱀으로 보아야 한다. 그게 바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문장의 의미다. 뱀의 앞이나 뒤에 형용사를 붙이면 안 된다. 착한 사람, 사나운 호랑이, 징그러운 뱀 같은 것들은 모두 우리들의 선입견일 뿐이다. 하지만 우린 그런 것 없이 살 수 없음은 물론 제대로 인식할 수도 없다. 그게 딜레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의외로 쉬울 수도 있다. 그게 아마도 그럭저럭사는 게 아닐까 싶다. 세상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것 같은 존재로 사는 것 말이다. 너무 패배주의 같아서 위험해 보이는가? 그게 잡어적(雜魚的) 삶이 아닐까.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와 필요 없는 존재는 어쩌면 같은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필요라고 하는 필요성의 이데올로기에 꽁꽁 묶여 있다. 그게 마치 본질주의의 양극단, 반드시 어떻게 살아야만 한다는 교본(敎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가의 사진에서 규정하기 쉽지 않는, 아니 차라리 규정을 거부하는 것 같은 이미지들을 본다. 그렇게 풍경의 기억들은 스쳐가는 것 아닐까. 삶과 세계가 이질적인 것처럼, 이질적이고 싶어서 이질적인 게 아니라 그냥 무심하게 이질적인 것들말이다. 그걸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이질적인 자신이 보인다.

 

 이광수·최희철 /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중에서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간  (0) 2016.08.25
내 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0) 2016.08.01
수우미양가  (0) 2016.04.28
처음처럼  (0) 2016.03.08
너를 기다리는 동안  (0) 201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