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 조목사
점잖은 신입자가 들어왔습니다. 자기를 조목사라고 소개했습니다. 좋은 안경 끼고 나이도 마흔 정도, 말씨도 목사처럼 무게 있었습니다. 거기다 들어온 바로 이튿날 영치금으로 건빵 20봉을 구매해서 감방 동료들에게 한 봉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교도소 구매부에서 파는 ‘오복건빵’은 보릿가루로 만든 것이지만 건빵 한 봉씩 받아 든 행복이 대단합니다. 다들 ‘저 사람 범틀인가보다. 앞으로 건빵 자주 얻어먹겠구나’하고 기대했습니다. 범틀은 교도소 은어입니다. 돈을 많이 쓰거나 편지, 면회가 많은 사람을 말합니다. 반대는 개틀입니다.
그런데 처음 한 봉지 나누어준 후로는 일절 없습니다. 건빵을 사서 자기 혼자만 먹었습니다. 혼자 먹기는 했지만 비교적 양심적으로 먹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잠든 밤중에 조용히 이불 속에서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문제였습니다. 건빵을 먹어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소리 안 나게 깨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3개, 4개까지는 됩니다. 나도 해 봤습니다만 침이 충분히 배게 해서 천천히 깨물면 소리가 안 납니다. 그러나 그것도 4개, 5개가 되면 소리가 조금씩 나기 시작합니다. 침이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조목사가 건빵을 먹고 난 이튿날 아침이었습니다. 인원 점검 시간에 점검 대열로 줄 맞춰 앉아 있었습니다. 옆에 앉은 젊은 친구가 옆구리를 꾹 찔렀습니다. 뭐야? 귀에다 대고 조용히 이야기 합니다. “어젯밤에요, 조목사가요, 건빵 스물일곱 개 먹었어요.” 그걸 하나하나 다 세었던 것이지요. 아마 그 친구 외에는 세었던 사람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조목사가 밤중에 화장실 가다가 자고 있는 사람의 발을 밟았습니다. 겨울에 화장실 가다가 누워 있는 사람 발 밟는 건 흔히 있는 일입니다. 교도소 잠자리는 칼잠에다 마주 보고 누운 저쪽 사람의 발이 정강이까지 뻗어옵니다. 그 위에다 솜이불 덮어놓으면 빈 곳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디가 발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조목사가 화장실 가다가 발을 밟았습니다. 발 밟힌 젊은 친구가 벌떡 일어나 다짜고짜 조목사와 멱살잡이로 밀고 당기는 것이었습니다. 한밤중에 멱살잡이라니 드문 일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말리지도 않고 오히려 가운데 싸움판을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조목사가 젊은 사람의 상대가 될 리 없습니다. 내가 뜯어 말렸습니다. 그 이튿날 조목사가 나한테 와서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신 선생은 애기가 통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심한다는 것이 앞으로는 건빵을 안 먹겠다는 건가 했더니, 발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싸움의 원인이 발이 아니라 건빵이라는 사실을 조목사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란 것도 거짓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릇
성공은 그릇이 가득 차는 것이고, 실패는 그릇을 쏟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성공은 가득히 넘치는 물을 즐기는 도취임에 반하여 실패는 빈 그릇 자체에 대한 냉정한 성찰입니다. 저는 비록 그릇을 깨트린 축에 속합니다만, 성공에 의해서는 대개 그 지위가 커지고, 실패에 의해서는 자주 그 사람이 커진다는 역설을 믿고 싶습니다.
간장 게장
얼마 전에 간장 게장을 먹다가 문득 게장에 콜레스테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검색하다가 ‘간장 게장’에 관한 시를 발견합니다. 시제는 <스며드는 것>이었습니다. 간장이 쏟아지는 옹기그릇 속에서 엄마 꽃게는 가슴에 알들을 품고 어쩔 줄 모릅니다. 어둠 같은 검은 간장에 묻혀가면서 더 이상 가슴에 품은 알들을 지킬 수 없게 된 엄마 꽃게가 최후로 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간장 게장’은 이미 간장 게장이 아닙니다. 그 시를 읽고 나서 게장을 먹기가 힘듭니다. 엄마 꽃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겨울나무 별
겨울은 별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모든 잎사귀를 떨구고 삭풍 속에 서 있는 나목처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계절입니다.
한 해를 돌이켜보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내년 봄을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겨울밤 나목 밑에 서서
나목의 가지 끝에 잎 대신 별을 달아 봅니다.
첩경
첩경과 행운에 연연해하지 않고 역경에서 오히려 정직하며, 기존(旣存)과 권부(權富)에 몸 낮추지 않고 진리와 사랑에 허심탄회한, 그리하여 선택한 우직함이야말로 인생의 무게를 육중하게 합니다.
내 손 네 손
네 손이 따뜻하면 내 손이 차고 내 손이 따뜻하면 네 손이 차다. 우리 서로 손 잡았을 때.
손잡는다는 것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것입니다. 물이 높은 것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체온도 따듯한 손에서 찬 손으로 옮아갑니다.
그리움
미술 시간에 어머니 얼굴을 그린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그 친구에게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림은 ‘그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뿐입니다.
여럿이 함께
‘여럿이 함께’라는 글 속에는 방법만 있고 목표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목표는 ‘함께’속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속에 있습니다. ‘여럿이 함께’는 목표에 이르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목표 그 자체입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나는 법입니다. 먼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로부터 당면의 실천적 과제를 받아 오는 이른바 건축의지(建築意志)는 거꾸로 된 구조입니다. 목표와 성과에 매달리게 하고 그에 이르는 전 과정을 수단화하고 황폐화합니다. 설계와 시공은 부단히 통일되어야 합니다. ‘여럿이 함께’는 방법이면서 목표입니다.
우직함
세상 사람들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태항산과 왕옥산 사이의 좁은 땅에 우공이라는 아흔이 넘은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큰 산이 앞뒤를 막고 있어서 가족들과 두 산을 옮기기로 의논을 모았습니다.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渤海)까지 갖다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흙을 파는 것도 큰일이지만 파낸 흙을 버리기 위해서 발해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 꼬박 일 년이 걸렸습니다. 지수라는 사람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이 정말 망령’이라며 비웃었습니다. 우공이 말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계속하고, 아들이 죽으면 또 손자가 그 일을 잇소 그리하여 자자손손 계속하면 산은 유한하고 자손은 무한할 터인즉 언젠가는 저 두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요.”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가 태항산은 삭동 땅으로, 왕옥산은 옹남 땅으로 옮겨주었습니다. 마오쩌둥은 우공이산의 우화 중에서 옥황상제가 산을 옮겨 주었다는 부분을 민중이 각성함으로써 거대한 역사를 이룩한다는 내용으로 바꾸었습니다.
신영복 / ‘처음처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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