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이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착어(着語)
기다림이 없는 사람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 두부 장사의 핑경 소리가 요즘 없어졌다. 타이탄 트럭에 채소를 싣고 온 사람이 핸드마이크로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어디선가 병원에서 또 아이가 하나 태어난 모양이다. 젖소가 제 젖꼭지로 그 아이를 키우리라. 너도 이 녹같은 기다림을 네 삶에 물들게 하리라.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기다려 본 사람은, 아니 기다려 본 사람만이 안다. 기다림이란 희망과 불안의 교차점이라는 것을.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 아닌 그 기다림. 그사이에 희망과 불안이 오가며 불안은 희망을 키우고 희망은 다시 불안을 자라게 한다. 그리하여 앉아서 기다려도 마음은 이미 문밖을 넘어 네가 오는 길목으로 마중을 나간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 또한 너에게 가고 있다는 말은, 그런 점에서 사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여기에 시인은 ‘착어’를 덧붙였다. 착어란 불가에서 공안(公案)에 붙이는 짤막한 평(評)을 가리킨다. 연인을 기다리는 듯한 시를 읽고 난 후, 그것을 화두 삼아 생각을 좀 해 보자는 것이렷다.
착어의 내용은 이렇다. 기다림은 사랑이다. 기다림은 희망이다. 희망 때문에 기다리고, 절망 때문에 또 희망을 기다리며 또 기다린다. 하면서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초조하다. 기실,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 기다림은 삶을 지치게 만든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믿음과 의지다. 시인은 기다림이 수동적인 것만이 아님을 확실히 하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너에게 가고 있다는 것. 그것이 기다림이라고 시인은 강변하고 있는 게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아무리 먼 데 있어도, 그런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우리는 드디어 만나게 된다. 그 기다림의 대상은 연인일 수도 있고, 합격 통지서일 수도 있고, 분만실 태아의 울음소리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오늘도 식당 주인은 손님을 기다리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기다린다.
정말 그리운 것은 그 ‘녹 같은 기다림’이다. 삶이 녹슬 정도로 기다리는 그 간절함이 그리운 거다. 어느새 우리는 그런 소중한 기다림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정재찬 / ‘시를 잊은 그대에게’중에서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기다린다.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누구도 다가 오지 않는 시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일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격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은 형벌의 시간이며 동시에 축복의 시간이다.
당신, 지금 기다리고 있는가? - 조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