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허영만 화백이 그랬다.
자기는 아무리 젊음이 좋다 해도 30대로 돌아가기는 싫다고.
늙어서도 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는 지금이 좋다고.
누구나 밥벌이는 지겹다.
대개는 한 달을 벌어 그다음 한 달을 살고
혹 누구는 하루벌이로,
또 누구는 일 년 벌이로 각자의 능력과 팔자대로 살아간다.
하루하루 밥벌이에 허덕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막연히 염원하던 큰돈이 생겼다고 치자,
그때의 기분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개학을 하려면 아직 제법 많은 날이 남아 있는데
방학숙제를 미리 다 해놔서 아무런 마음의 짐이나 부담이 없이
편안하게 아침 눈을 뜨고,
뜨고 나서도 한번 곱절의 편안함을 느끼며 온돌바닥에 나른히
몸을 뉘던 어린 시절 그때 그 순간 말이다.
순도 100%의 마음의 평화, 여유, 뭐 그런 것.
어린 시절엔
(설사 방학숙제를 다 해놓지 않았더라도)
1월의 이즈음이면 저절로 얻어지는 그런 여유를
이제는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맛볼 수 있다는 건
어른으로서의 슬픔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유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처럼 누려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슬픔일 것이다.
사람
한 명의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읽거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일과도 같다.
누구든
얼굴에는 살아온 세월이 담기고
모습과 말투, 행동거지로 지금을 알 수 있으니
누군가를 마주한다는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일생을 대하는 것과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친구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타인이란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말이 될 수 있고, 나의 행동과 내가 빚어내는 모든 결과물들을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라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내가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친구라고 부르며 이런 중요한 일을 해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없거나 그 수가 많지 않을 때, 우리는 외롭고 또 고민하게 됩니다.
제 나이 서른여덟, 그러나 아직도 저는 남은 세월, 저의 새로운 친구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정의 거미줄을 촘촘히 쳐놓은 채 단 한 사람이라도 나와 생각과 취향이 비슷하며, 나에게 동류라는 동질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사람, 같은 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유머의 코드가 맞는 사람, 나를 이해해주고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을 묵묵히 기다리다 언젠가 그물에 누군가가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보여주고 마음을 열 생각입니다. 역시 친구를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란,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일 테니까요.
이석원 / ‘보통의 존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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