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
미셀 공드리 감독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사랑의 기억과 망각이 갖는 운명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지루한 남자 조엘과 자유분방하며 충동적인 클레멘타인은 서로 다른 성격에 끌리어 사귀게 된다. 2년 동안 사귄 두 사람은 발렌타인 데이를 앞두고 이별을 맞는다. 극단적인 성격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의 충동적인 행동을 감당하지 못했고, 클레멘타인은 조엘의 소극적인 성격을 받아드리지 못했다.
클레멘타인은 라쿠커 병원으로 찾아가 아픈 사랑의 기억을 지우는 시술을 받는다. 조엘은 라쿠커 병원에서 온 편지를 통해서 클레멘타인이 자신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엘 역시 클레멘타인의 행동에 화가 났고, 홧김에 사랑의 기억을 지우는 시술을 받는다.
조엘은 사랑했던 기억이 모두 지워진 상태로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출근길에 회사로 가지 않고 충동적으로 기차를 타고 몬톡 해변으로 간다. 그곳에는 마찬가지로 기억이 지워진 클레멘타인이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사람처럼 서로를 소개하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영화는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이 갖는 운명은 우리가 기억을 지워버린다고 해도 영원성을 갖는다. 사랑의 기억은 우리가 잊어버리고 싶다고 해서 잊혀지는 것이 아니며, 사랑의 운명 역시 우리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 망각이 없으면 괴로움으로 살지 못할 것이다. 살아오면서 겪는 수많은 고통들이 그대로 회상된다면, 누구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망각이 축복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현실의 괴로움을 잊게 해줄 뿐만 아니라, 언젠가 그 상처를 껴안을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억은 존재의 집이다. 내가 살고 있다는 존재의 기원은 내가 살아온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삶의 경험은 기억을 구성한다. 비록 기억이 의식 속에서 지워지지 않더라도, 기억은 이미 자신의 존재 가운데 각인되어 있다. 기억에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랑 역시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의 결합을 통해서 형성된다. 기억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그 기억을 소중히 공유하는 것은 사랑을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느낌에 따라 서로 다르게 기억을 재구성한다.
두 사람만의 기억은 사랑을 장식하는 존재의 집이며 사랑의 건축물이다. 사랑의 기억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내일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실수는 기억이 과거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 있다. 사랑의 기억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서 내일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주창윤 / ‘사랑이란 무엇인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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