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tory

연꽃 있는 사랑이야기

송담(松潭) 2012. 4. 23. 17:37

 

연꽃 있는 사랑이야기

 

 

 고려 충선왕의 연애담은 애틋하다. 그는 원나라에 머물면서 한 여인과 정을 나누었다. 환국을 앞둔 날, 여인이 그의 소매를 잡고 놓지 않았다. 그는 연꽃을 꺾어주며 몌별(袂別)했다. 몸은 오고 마음은 둔 탓일까. 그리움이 사무쳐 근황이나마 듣고자 하였다. 밀명을 받고 원나라에 간 사람은 심복인 이제현이었다. 그는 탐문 끝에 여인을 만났다. 여인의 꼴은 초라했고, 먹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여인이 겨우 붓을 들어 이제현에게 시 하나를 적어주었다.

 

떠나시며 준 연꽃 한 송이

처음에는 참으로 붉었답니다.

줄기를 떠난 지 며칠이 못 되어

초췌한 모습 저를 닮았답니다.

 

 충선왕은 이별의 정표로 연꽃을 주었다.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꽃은 시들었고 홀로 된 여인은 수척해졌다. 돌아오지 않는 왕을 그리는 여인의 잔영이 시의 행간에서 바스락거린다. 사뭇 애처로운 시정이다. 이제현은 귀국하여 충선왕에게 거짓을 고했다. 여인이 술집에서 젊은 남자와 놀아나고 있는데 불러도 오지 않더라고 했다. 왕은 땅에 침을 뱉었었다. 한 해가 지나고 그제야 이제현은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털어놓았다. 여인의 형색을 들려주고 전해 받은 시를 올렸다. 왕은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주군의 처신을 헤아려 일부러 거짓말을 한 신하의 충성심 때문은 아니었다. 시들어버린 그 연꽃조차 더는 찾을 길이 없으리란 걸 안 까닭이다. 성현의 용재총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가엾기는 원나라의 여인이다. 말라버린 꽃에는 향기가 없고, 박제된 사랑에는 훈기가 없다. 시든 연꽃 걸어두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려도 떠난 사랑은 꿈에서나 만날까. 꽃은 자태라도 있지만 몽중의 연인은 깨고 나면 그림자보다 못하다. 하여 청나라 시인 원매는 이렇게 읊조린다.

 

저는 빈방에서 꿈을 꿉니다.

임이 먼 곳에 계신 걸 잊었고

이별한 마음마저 익숙지 않아

몸 돌려 껴안는데 허공이더이다.

 

 그리워 그리다가 꿈에 만난 임 얼싸안았더니 웬걸 임이 누었던 빈자리에 팔을 둘렀다는 하소연이다. 빈방은 썰렁해서 외롭고 시든 꽃은 되살아나지 않아 서럽다. 애잔한 이별의 이미지가 대저 이와 같다.

 

손철수 / ‘꽃피는 삶에 홀리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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