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거리
신경숙의 <부석사>에는 한 오피스텔 건물에 살고 있는남녀가 등장한다. 야채 서리를 하다 만난 그와 그녀는 그저 데면데면한 이웃일 뿐이다. 그들은 과거에 각각 사랑하던 사람에게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 1월 1일 새해에 두 사람은 함께 부석사에 가기로 결정한다. 충동적으로 갑자기 만나자고 청하는 옛 사랑, 옛 상처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부석사에는 나란히 겹쳐 서 있는 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돌들 사이에는 바늘과 실이 겨우 들어갈 만한 틈이 있어서, 두 돌은 서로 맞붙은 데가 없다. 그 돌들의 이름이 부석이다. 그와 그녀는 부석사에 가서 부석을 보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차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잃는다. 한적한 도로 위, 소복소복 쌓인 눈이 한 가득이라 차는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된다. 로맨스가 일어날 법한 상황이지만, 그와 그녀는 각자 운전석과 조수석에 가만히 앉아 있다. 다만 추울까 싶어 담요를 끌어다 덮어주거나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먹을 뿐이다. 서로 닿지 않고도 가까이 있는 부석처럼, 그와 그녀는 각자의 상처를 끌어안은 채 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따뜻한 위안이 된다. 소설의 말미에 말없이 앉은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생각한다. 아주 조금씩 가까워질 채비를 하는 듯이.
<부석사>의 남녀가 그러했듯, 사랑은 상처 입은 두 사람이 서로를 위안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다시 고통 받을지 몰라 불안한 마음에도 사랑은 또 한 번 인간을 믿게 만들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하는 힘이 있다. 동시에 사랑은 바늘만한 거리를 두고 외따로 존재하는 부석과도 같다. 그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무게를 그대로 지우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두 사람이 아주 작은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일인 것이다.
곽금주/ ‘도대체, 사랑’중에서
* 위 글 제목 ‘사랑의 거리’는 독자가 임의로 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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