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tory

게으르지 않은 사랑

송담(松潭) 2016. 11. 28. 00:24

 

게으르지 않은 사랑

 

 

 

 

 

아름다운 사랑 (10p)Mixed media on canvas 2009년작 (성하림 작품)

 

사진출처 :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그리는 화가 성하림 블로그

 

 

 

 

 ‘나 어디가 예뻐?’라는 질문에 응 그냥 예뻐라고 말하는 태도가 진실 되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성실한 사랑의 태도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조금은 게으른 사랑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김애란의 단편 소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의 주인공 용대는 흔히 말하는 문제아였다. 그는 가족의 수치’, ‘가계의 바보’, ‘가문의 왕따’, 어느 집안에나 꼭 한 명씩은 있는 천덕꾸러기였다. 그 문제아는 커서도 사고만 쳐서 가족들로부터 거의 버림받다시피 했다. 용대는 시골을 떠나 서울에서 살며 중국집 배달, 이발소 보조, 술집 웨이터, 아파트 경비 일을 전전했지만 꾸준히, 그리고 성실히 하는 일은 없었다. 툭하면 사고를 쳤고 쉽게 일을 그만 두었다. 그런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지린성 옌지에서 왔다는 조선족 여인 명화, 그녀 역시 식당 설거지, 찜질방 청소, 발 마사지, 가정부, 모텔 청소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가난과 고된 일에 지친 그들은 서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의지했고 사랑했다. 구청에서 도장만 찍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했다. 하지만 행복했던 짧은 시간이 흐르고 아내는 위암에 걸렸다. 결국 그녀는 나쁜 냄새를 풍기며’ ‘바싹 쪼그라든 채’, ‘까맣게죽었다. 그런데 그녀는 죽기 전에 남편을 위해 간단한 중국어 회화를 테이프에 녹음했다. 그것은 허물어가는 육체 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녀가 유일하게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기회를, 작지만 소중한 방법을 남겨주고 싶었던 것이다.

 

 결혼후, 용대는 그런 게 있었단 사실도 잊고, 테이프를 검은 봉지에 처박아뒀다. 그런데 아내가 세상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현 듯 그게 눈에 들어온 거였다. 테이프는 순서 없이 섞여 있었다. 용대는 그중 아무거나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챙겨왔다. 오늘 배울 문장이 무엇인지 내일 외울 단어가 무엇일지는 용대도 알지 못했다.

런스 니 헌 까오씽

용대는 무심하게 따라 했다.

런스 니 헌 까오씽

이어, 명화가 한국말로 말했다.

당신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용대도 그 말을 따라 했다.

당신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그렇게 명화와 말을 주고받는 용대의 모습은 마치 남들과 다른 포크댄스를 추고 있는 소년처럼 보였다. 하지만 용대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 여자 나라말을 외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어쩌면 앞으로도 영영 못 가볼 나라의 말을 하면서, 자신이 차츰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김애란 <비행운> -

 

 그는 그녀에 의해 변했다. 더 정확히는, 그녀의 사랑으로 차츰 나아지고있었다. 명화가 다른 사람처럼 용대의 못난 면만 보았다면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명화는 자신이 용대와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며 그를 보았고, 그것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 그의 다른 모습, 그만의 어떤 미덕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명화는 아프지만 용대를 위해 또박또박 녹음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남겼던 것이다. 구박받고 욕먹는 못난 용대를 명화는 사랑했고 짧았지만 그 사랑을 위해 게으르지 않았다. 그래서 용대는 그녀로부터 다시 태어났고 구원받았다.

 

 사랑하니까 사랑한다는, 사랑엔 이유가 필요 없다는 말만 되뇌며,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을 끝내 사랑이지 않게 한다. 노력은 크고 거창한 서사시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남들은 보지 못한 면을 보며 온전히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태도에서 나온다. 가령, 사소하다고 취급되는 것들이나 작은 부분을 가장 특별하게 이야기해주고 생각하는 마음 같은 것들 말이다. 이것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방식의 헌사다.

 

 그저 사랑만 한다고 다시 태어나고, 구원받고, 없던 내가 새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테다. 게으른 사랑은 아무것도 다시 태어나거나 존재하게 할 수 없다. 그것에는 게으르지 않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자기계발에만 힘쓰지 말고, ‘내 자기의 계발에도 힘써야 하지 않을까. 보다 세심히 그와 그녀를 바라보고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찾아내고, 한 사람을 진심으로 깊이 이해하는 일들을 말이다.

 

 

안바다/ ‘사랑에 대한 어떤 생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