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조정래 / 태백산맥 4권에서

송담(松潭) 2014. 12. 8. 08:41

 

  

조정래 / 태백산맥 4권에서

 

< 1 >

 

 이지숙은 중도들판을 바라보았다. 긴 방죽을 경계로 간척지는 질펀하게 펼쳐나가고 있었다. 바다를 막아 일군 농토...... 그녀의 가슴으로 알 수 없는 슬픔이 물결져왔다. 방죽을 막기 전에는 바닷물이 지금 자신이 서 있는 바로 발 아래로 뻗어가고 있는 신작로 가까이까지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니 저 넓고 넓은 간척지는 그때 뻘밭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 뻘밭을 농토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은 의지를 모으고 노동을 바친 것이다. 그건 평지에서 돌담을 쌓거나 축대를 쌓는 일이 아니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빨밭을 가로질러가며 바닷물을 차단시킬 수 있도록 튼튼한 방죽을 쌓는 일이었다.

 

 ‘워따 말도 마씨요. 고것이 워디 사람이 할 일이었간디라. 죽지 못혀 사는 가난하고 가난헌 개돼지 같은 목심덜이 목구멍에 풀칠하자고 뫼들어 개돼지맹키로 천대받아 감서 헌 일이제라. 옛적부텀 산몬뎅이에 성 쌓는 것을 질로 심든 부역으로 쳤는디, 고것이 지아무리 심든다 혀도 워찌 뻘밭에다 방죽 쌓는 일에 비허겄소. 돌뎅이 지고 깔끄막(비탈) 올라 댕기기도 심이 들것제만, 장단지고 허벅지꺼정 푹푹 빠지는 뻘밭에서 돌짐 지는 고초에야 비허것쏘? 그라고, 뻘밭이 그냥 뻘밭이 아니라 아칙에 한 분, 저녁참에 한 분, 하로에 두 차례씩 바닷물이 들고 나는 판이니 일허기가 워쩌것쏘. 뻘언 소금물을 품고 더 짠잔득혀졌제, 물이 실렸든 동안에 못 헌 일 볼충허라고 뒤에서는 잡지제, 심이 곱쟁이로 드는 것이 그 일이요. 저 방죽 높기가 논 쪽에서는 한 질, 갯바닥 쪽에서는 두 질 남짓이라고 시퍼 보덜 마씨오. 저 방죽이 바닷물이 밀어대는 심 이겨냄스로 저리 짱짱허니 버티게 헐 기초 맹그니라고 뻘 속으로 을매나 많은 돌멩이럴 처벅아 도굿대질(절구질) 헌지 알것소? 하매 눈에 뵈는 것보담 더 많은 돌뎅이가 뻘밭 속에 백혔을 것이요. 그렁께 저 방죽을 지대로 볼라먼 눈에 뵈는 높이만 볼 것이 아니라 눈에 안 뵈는 높이꺼정 합쳐서 봐야 지대로 보는 것이오. 그리혀서 20리럴 뻗어간 방죽잉께. 거그에 백힌 돌뎅이 수가 을매일 것이며, 퍼날은 흙은 또 을매나 많은 등짐이겄소. 다 골 빠지게 일얼 혔음스롱도 고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웂소.

 

 그 에롭고 피맺히는 일을 가난하고 배곪은 조선사람덜 손으로 혔다는 것만 확실허제. 근디 기맥히게도, 방죽을 다 쌓고 본께 배불리는 놈덜언 일본놈덜이었다 그것이요. 방죽을 쌓다가 죽기도 여럿 혔고, 다쳐서 병신 된 사람도 많고...... 하여튼지 간에 저 방죽에 쌓인 돌뎅이 하나한, 흙 한 삽이 다 가난한 조선사람덜 핏방울이 한() 덩어린디, 정작 배불린 것은 일본넘들이었응께, 방죽 싼 사람덜 속이 워저것소. 허나 그보담도 더 큰, 나라 뺏게뿐 못난 처지에 고런 서럼이야 도리 없이 참았다고 혀도, 더 기맥힌 꼴은 해방이 되어갖고 벌어지지 않았것소. 동척 재산인 저 논얼 불하할 적에는 응당 소작인헌테 해야만 옳은 순서고 순린디. 미군정청눔덜언 소작인을 제껴놓고 지주놈덜허고 짝짝궁이 되어부렀단 말이요. 중도들판 소작인덜언 거지반 방죽 쌓는 일을 혔던 사람들이고, 도 그런 집안 자석덜인디 모다 그 꼴얼 당하고 말었으니 누가 이눔에 세상얼 믿고 따르겠소. 니나웂이 가심에 쌓이느니 미움이고 원한이제

 들판을 한스럽게 바라보며 방 노인이 한 말이었다.

 

(4312~314페이지)

 

< 2 >

 

결혼 - 여자와 사는 것,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자와 성을 나누고 애를 낳아 키우며 사는 것.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여자와 성을 나누는 것, 그것은 생각만 해도 저항감이 치미는 일이었다. 그가 동정을 떠나보낸 것은 버마 전선에서였다. 상대는 정신대여자였다. 여자의 음부가 그렇게 진저리쳐지게 추악하고 토악질나게 더러운 것인 줄은 몰랐었다. 천막 안으로 뛰어들어 발기한 그것을 정신없이 여자 사타구니 사이에다 디밀었고, 그리고, 배설이 몰아오는 폭풍에 휩쓸려 정신이 어릿거리다가 풍덩 빠져버린 허망한 구덩이, 바지를 추슬러올리다가 문득 눈길이 멎은 곳, 그것은 노출되어 있는 여자의 음부였다. 붉은 속살을 드러내며 헤벌어진 음부는 가래침 같기도 하고, 고름같기도 한 정액을 머금고 있었고, 음부꼬리로는 그것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거무튀튀한 색깔의 음부 가장자리는 정액이 맥질이 되었는데, 듬성듬성 난 음모들은 맥질된 정액의 끈끈함에 풀 죽어 거무튀튀한 피부에 달라붙은 채 어지러운 무늬를 수놓고 있었다. 시궁창! 그 느낌과 함께 토악질을 하며 천막을 뛰쳐나왔다. 수많은 남자들이 싸질러 놓은 정액을 닦아낼 여유도 없이 음부를 드러내놓고 있는 그 여자가 바로 동족이라는 사실을 환기한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후로 여자와 성관계를 해본 적이 없었다. 젊은 육신이 일으키는 성욕은 수음으로 처리되었고, 깨끗한 여자의 그곳이 그럴 리가 없다고 스스로를 일깨우고 생각을 고쳐먹으려 애써보았지만 첫 경험을 통해 판 박혀진 그 더러움과 추악함은 이겨내지지 않았다.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여자는 전쟁의 수라장 속에서 살아나기나 한 것일까. 목숨을 부지했다면 고향으로 돌아오기는 했을까. 어찌할 수 없이 수음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 기억에 사로잡히고, 그 기억을 찢어대며 안쓰러운 마음으로 떠올려야 했던 그 얼굴을 기억할 수조차 없는 여자에 대한 염려, 심재모는 그 생각을 다시 되풀이하고 있었다.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 한들 그 몸으로 어떻게 살까. 시집을 갈 수도 없을 것이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못 견뎌 고향에서 살 수도 없을지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을 잇고 있는 심재모의 머리를 스치는 말이 있었다. 남자의 강간은 범죄로 생각하지도 않고, 강간을 당한 여자는 그것이 사건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 현상이라는 권 서장의 말이었다. 심재모는 자신이 그 여자에 대해서 했던 생각이 바로 권서장이 했던 말의 반증인 것을 깨달았다.

 

그 여자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 손가락질을 당하고, 고향에서 쫓겨나야만 하는가. 그 여자는 가엾고 불쌍한 피해자일 뿐인 것이다. 나라 잃어버린 남자들의 빙충맞음으로 여자들이 당한 수난이었다. 그렇게 고통 받은 여자들이 도대체 몇 명일까. 일본놈들은 극비에 붙인 채 전국 방방곡곡에서 여자들을 강제로 끌어갔으므로 그 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고, 그 여자들은 만주에서 버마에 걸치는 광대한 동남아 전선에 고루 보내졌기 때문에 그 수는 상상보다 훨씬 많을 것이리라. 3만・・・・・・ 아니 5만, 심재모는 고개를 갸웃했다. 7만……… 그 전선이 얼마나 넓은데, 10만…………. 심재모는 더 이상의 수를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다 어찌 된 것일까. 분명 해방이 되었는데도 그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한 번도 거론된 일이 없지 않았는가. 심재모로서도 그건 너무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임시정부가 귀국해 대대적인 환영식을 벌이고, 광복군이 의기양양하게 귀국해서 기세를 올리고, 죽음을 면한 학도병들은 끌려갈 때와는 정반대의 당당함으로 개선 아닌 개선을 앞세우고 돌아와 조직체를 만들고 법석이었는데, 정신대리는 존재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회는 여자들이 당한 일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 잊어버리고 말았을까. 정신대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면 나라 체면을 깎고 위신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덮어버리고 만 것일까. 여자들 스스로가 창피스럽고 부끄러워 남모르게 꼭꼭 숨어버린 것이었을까.

 

(4권 22~23페이지)

 


< 3 >

'싸게싸게 짐치 내오니라.'

발소리와 함께 이 말이 들리고 곧 방문이 열렸다. 마삼수의 한 손에는 주전자가 다른 손에는 양푼이 들려 있었다. 마삼수가 방바닥에 내려놓은 양푼에는 찬 기운 머금은 두부가 아래에 네 모, 그 위에 두 모로 담겨있었다. 노덕보의 침 넘기는 소리가 꿀륵 하고 들렸다.

지삼봉이가 사발 세 개와 항아리 뚜껑에다가 배추김치를 수북하게 담아왔다. 배추김치는 반쪽 난 포기의 윗부분만 칼질이 되어 있었다.

연장자 순으로 술잔이 돌았다. 술잔이 차례 오기를 기다리는 세 사람은 손가락으로 김치를 찢기 시작했다. 두 가닥이나 세 가닥으로 찢겨지는 김치는 먹음직스러웠다. 술을 비운 사람은 다음 사람에게 술잔을 돌려 술을 채워주고는, 손으로 두부를 뭉텅 잘라 찢어놓은 김치로 그것을 둘둘 감았다. 그리고 입을 있는 대로 벌려 생두부김치쌈을 밀어넣었다.

 두부도 차고 김치도 차고, 그래서 이빨이 시린데도 오히려 차가운 그것이 참맛이었다. 두부와 김치에 살얼음이 사르르 잡히면 그 맛은 한층 기막혔다. 김치도 손으로 찢고, 두부도 손으로 떼내고, 두부에 김치를 감는 것도 손으로 해야만 제맛이 나는 그런 것이었다.

「어허, 김치 맛 한분 기맥히다.」

김복동이 달게 입맛을 다셨다.

「우리 제수씨 솜씬디 더 말혀 머 허겄소.」

마삼수가 김치쌈을 우물거리며 대꾸했다.

「니 참말로 장개는 원제 갈 것이다냐. 귀에 못 박히게 헌 말인디 니연장이 참말로 션찮은 것 아니여?」

노덕보가 새로울 것 없는 소리를 또 되씹고 있었다.

「맞어라. 나는 붕알이 옰는 고자랑께요.」

지삼봉이가 김치를 찢으며 느물거리고 웃었다. 그는 이미 입산한 지필구의 친동생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그도 먹고살 길을 찾아 머슴살이를 시작했던 것이고, 부엌일하는 점예가 마음에 있기는 했지만 머슴방에서 살림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술이고 두부고 김치고 금방 깨끗하게 치워졌다. 사랑방이나 머슴방에서 즐겨 벌이는 겨울밤 잔치가 끝난 것이다.

「인자 가야제.」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은 손바닥으로 입술을 훔치며 일어섰다.



                                                                   < 4 >


이중과세(二重過歲)를 하지 말자. 읍사무소 직원들이 동원되어 보름이 넘도록 마을마다 주지시키고 다닌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중과세라는 말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글줄이나 깨친 어떤 사람은, 하먼, 이중으로 세금을 매기먼 쓰간디. 고것이야 당연지사 중에 당연지사제, 하는 뜻풀이를 하기도 했다. 읍사무소 직원들은 이중과세가 양력설과 음력설을 이중으로 쇠지 말자는 뜻임을 입에서 쓴 물이 나도록 되풀이 해야
했고, 그때마다 「음마, 설이야 음력설을 한 분 쇳제 원제 양력설이것도 쇴습디여? 설이먼 그냥 설이제 음력설은 머시고 양력설은 또 머시다요? 무담씨 있지도 않던 양력설얼 맹글어내갖고 요리 북새질얼 쳐대는지 몰르겄네.」 이런 식의 면박을 당하고는 했다.

「음마, 음마, 참말로 갈수록 요상시런 소리가 나오요이. 누구야 무신설을 쇠든 말든, 넘 젯상에 배놔라 감놔라, 살다 본께 별눔에 간섭 다듣겄소.」

「이건 간섭이 아니오. 나라가 정한 법이오.」

「머시라고라? 나라가 정한 법?..…………」

이야기는 대개 이런 상태에서 끝나게 마련이었다.

「하이고, 참말로 염병덜 허고 자빠졌다. 허라는 농지개혁법인지 토지개혁법인지는 안 맹글고 기껀해야 설 쇠는 법 맹글었구마? 허 참, 소가 다 웃을 일이시웨」 「금메 말이요, 있는 즈그눔덜이나 설얼 두 분도 쇠고 세 분도 쇨 쌀이 있겄제, 밑구녕 째지게 가난헌 우리들이야 워디 설얼 두분썩 쇠라고 혀도 쇨 수가 있어야 말이제.」 「양력이라는 것을 일본눔덜도 좋아했는디, 양력설얼 쇠고 양력얼 쓰고 허는 것이 무신 이문이 있어야 쓸 것 아니냐 그것이여. 양력을 쓰먼 농사절기가 맞기럴 혀, 1년 사시절 바뀌는 기운이 맞기럴 혀, 양력 써서 농새 망칠 해만 있제 이문이 머시냐 그것이여.」 「맞고말고라. 양력이고, 양력설이고 다 서양눔덜 것인디, 날이 감스로 찬찬허니 보자 헌께 대통령이라는 사람도 믿을 만헌 사람이 못 되는디라. 서양서 오래 산디다가 서양여자꺼지 마누래로 삼다본께 서양물이 푹 들어서 되나캐나 서양식 따르라고 고런 법 맹근 것 아니겠소?」 「그 말 맞는 말이시. 그 영감탱이 안 믿은 것이야 첫닭 울 임시 부텀잉께. 독립운동혔담시로 친일헌 것덜얼 때레잡는 것이 아니라 됩데 고것덜허고 짝짜꿍이 되었을 적에 그 드런 뱃창시 알아뿐 것 아니겠어? 인자 그 영감탱이가 노망을 허는 것이시」

사람들은 읍사무소 직원이 사라지기를 기다려 이런 투로 입들을 모았다. 그리고, 막상 양력설이 되었지만 읍내의 어느 구석에서도 '설'이라는 느낌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정래/태백산맥4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