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변검술사로 살아가는 현대인

송담(松潭) 2014. 8. 17. 05:19

 

 

변검술사로 살아가는 현대인

 

 

 

 인간은 개인적인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일정하게 한정된 영역에서 제한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저마다 연기를 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그대로 다 드러내고 살아가는 것은 자기 스스로 상황을 개척해 나가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거나 아무 생각도 눈치도 없는 바보이기 십상이다. 개인에게 허용된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그만큼 현대사회로 올수록 안정적인 자아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상황에 맞게 연기를 하고 이를 위해 가면을 쓴다. 그나마 하나의 가면을 쓴 것도 아니다. 살아가면서 자연적인 성장, 삶의 조건 변화에 적응하면서 불가피하게 여러 개의 가면으로 바꾸면서 살아가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이 세상은 무대이며 모든 남자와 여자는 배우들이다. 그들은 각자의 배역을 좇아서 등장했다가 퇴장하지만 사람은 평생 동안 여러 가지 역을 담당한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극본 없는 연극이라고도 한다. 이 역시 인간들은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렇게 연기를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우리의 일상적인 표정이란 것은 일종의 가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인은 한꺼번에 여러 점의 가면을 쓰고 상황에 따라 순식간에 새로운 가면으로 바꾸어야 한다. 중국의 경극에는 변검술(變劍術)이라는 기술이 있다. 얼굴에 손을 대지 않고 가면을 썻다 벗었다 하는 신기한 기술이다. 짧은 동작 속에서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전혀 다른 가면을 쓴 수십 개의 얼굴로 변한다. 현대인들은 변검술을 본능적으로 습득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가면이 더 현실적이고 나아가서는 실질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가면을 벗은 인간의 모습이 오히려 낯설 뿐만 아니라 그 상태로는 사회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도 어렵다. 어찌해야 하는가? 가면을 현실로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하게 가면을 벗어 던져야 하는가? 우리의 정체성은 가면을 벗어야 획득되는가, 아니면 가면의 표정을 통해 나타날 수박에 없는 것인가?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  엔소르 1899

 

 엔소르(1860~1949)는 벨기에의 표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대표작 중 하나인   <가면에 둘러싸인 자화상>은 캔버스 가득히 온갖 표정들의 가면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오히려 자신의 모습은 감정이 죽어 있는 듯 표정이 없다. 가면들은 화난 표정, 웃는 표정, 슬픈 표정, 놀란 표정 등을 자랑하며 생명력을 뽐내는 듯하다. 그에게 가면의 기능은 얼굴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가면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아를 드러낸다.

 

 

 <참고>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미술은 대상에 대한 충실한 재현보다는 작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중에서 표현주의는 작가 개인의 자아를 적극적인 감정 표현을 통해 묘사한다. 특히 내면적인 불안, 공포, 고통 등을 다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비자연적인 색채를 사용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는 내적인 감정 중에서도 무의식 세계를 주로 표현한다. 공상이나 환상의 세계를 기괴한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두 가지 경향 모두 현실의 형태를 왜곡하거나 초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뭉크나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달리의 그림을 보면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림 속에서 사물은 변형되고 이성적인 논리는 사라진다.

 

 

박홍순 / ‘미술관 옆 인문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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