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의 뗏목과 부정부패
<메두사의 뗏목>은 당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1816년 6월, 프랑스 식민지로 출항한 범선 메두사호가 암초에 부딪혀 난파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배에 탄 사람은 모두 400여 명이었는데 구명정에는 250명밖에 탈 수가 없었었다. 구명정에 탈 사람은 선장이 정했는데, 여기에서 배제된 149명은 그림처럼 뗏목을 만들어 생존을 위한 사움을 시작해야 했다. 이들은 10여 일 동안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주변을 지나던 배에 의해 구조되었는데 생존자는 149명 가운데 단 15명 이었다. 그나마 이들 중 5명은 구조 직후에 바로 사망하였고 나머지 사람들도 표류 과정에서 겪었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다르면 표류 과정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급조된 뗏목은 형편없었기 때문에 가장자리에 있는 일부가 가장 먼저 바닷물에 쓸려 내려갔다. 당연히 서로 뗏목 안쪽을 차지하기 위한 필사적인충돌이 일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65명이 총으로 사살되었다. 표류 이틀 만에 숫자가 반으로 줄었다. 식량이나 물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소변을 받아먹기도 했다. 3일째부터는 시체에서 살을 발라내어 햇빛에 말려먹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뗏목의 돛대에는 줄줄이 인육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일주일이 지나자 28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나마 28명 중에도 힘없고 병든 사람은 하나둘씩 바다로 던져졌다. 이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15명만이 살아남았다.
이 그림이 화제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극적인 상황이나 미술사적 의미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요소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당연히 이 끔찍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궁금해 했다. 그 배경에는 부르봉 왕가의 부패가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유럽 강대국들은 식민지 확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아프리카 식민지는 막대한 부를 안겨주는, 한마디로 ‘돈 되는’ 사업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고위 관료에게 뇌물을 먹이고 식민지 개척에 참여하고자 했다. 메두사호 사건도 이러한 부패의 고리가 얽혀서 생긴 일이었다. 25년간 배를 탄 적이 없는 어느 퇴역 군인이 뇌물을 주고 부르봉 왕가의 신임을 얻어 식민지로 향하는 군함의 함장 자리를 차지했다. 이 선장은 배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무능함 때문에 누구나 알고 있고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는 암초에 걸려 배가 난파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뗏목에 있던 사람들이 겪은 고통과 죽음이 광범위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이 사건이 왕실의 연줄로 선장이 된 무자격 선장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 국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고, 선장에 대한 재판은 군주제 전체에 대한 재판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당연히 부르봉 왕가와 프랑스 정부 당국은 사건을 은폐하기에 혈안이 되었다.
부정과 비리로 인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우리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더 나아가 난파 이후의 과정이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더 나아가 난파 이후의 과정이 분노를 몇 배는 더 증폭시킨다. 사태의 전개 과정은 난파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조차 신분과 부(富)가 결정한다는 것을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준다. 배에 마련된 구명보트는 선장과 고급 장교, 귀족, 신흥 부르주아지 등 신분이 꽤 있는 사람들만 탈 수 있었고 이들은 무사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별 볼일 없는 하급 선원들이나 새로운 땅에서 새 삶을 살아 보겠다고 나선 서민들은 뗏목으로 내몰리고 죽음에 이르렀다. 그나마 원래는 뗏목을 구명정에 밧줄로 이어 해안까지 끌고 갈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선장은 뗏목에 연결된 밧줄을 끊어 버리고 도망쳤다.
흔히 유럽의 ‘신사도 정신’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많다. 위급한 상황에서 아이들과 여인 먼저 구하는 전통 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철저하게 신분과 부를 전제로 한다. 지배적인 신분과 부를 획득한 집단 내에서의 문제이다. 가난한 이들은 아예 처음부터 배제의 대상이 된다. 아니 아예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취급조차 받지 못했다.
박홍순 / ‘미술관 옆 인문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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