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화, 분리 전략
삶의 고단함은 인간에게서 서로에 대한 따뜻한 시선마저 앗아가 버린다. 매일의 삶이 고된 노동의 연속일 때, 그리하여 세포와 신경 하나하나에까지 피로가 축적되어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삶에 관심이나 애정을 갖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대화는 공감대를 전제로 하는데, 남편은 남편대로 직장에서의 경쟁과 삶이 전부이고, 아내는 반복되는 가사노동에 찌들어 있고, 아이는 학교와 학원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현실에서 함께 대화할 소재는 날이 갈수록 사라진다.
사회 구성원의 서로간의 대화 단절과 거리감 확대는 개인적인 성격의 문제도 우연한 현상도 아니다. 이런 현상은 인류 역사에서 지배와 피지배가 생긴 이래 지배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조장되어 왔다. 지배세력은 피지배층이 서로 모여서 대화하고 모여서 연대를 형성하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사회 구성원을 개별화시키고 각 개인에게 직접 국가를 통해 지배력을 행사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체제에 복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각 단계에서 지배세력은 이를 위한 여러 종류의 장치를 사용했다.
가장 무식했던 것은 신분제 사회였다. 여러 층으로 나뉜 신분을 통해 사회구성원들을 분할했다. 또한 지역적으로 고립시켜 하나의 힘으로 결집하는 것을 방지했다. 중세 말기에 교회와 귀족에 의해 자행된 마녀사냥은 그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15~17세기에 유럽에서 마녀 혹은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화형당한 사람이 무려 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의 죄목은 황당하기 이를 때 없는데 악마와 계약을 맺은 죄,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 죄, 악마 연회에 참석한 죄, 악마에게 예배한 죄, 악마의 꽁무니에 입 맞춘 죄, 악마와 성행위를 한 죄 등이다.
중세 말기에는 유럽 전역에서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었다. 종교개혁은 종교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 신분제에 기초한 봉건체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교회와 봉건귀족은 마녀사냥을 통해 구성원들을 개별화시킴으로써 종교개혁을 매개로 한 저항 흐름을 방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라고 해서 대중을 개별화시켜 분리 지배하려는 지배세력의 시도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형태가 세련된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지역주의에 의한 지역감정은 대표적인 현대판 마녀사냥에 해당한다. 지배세력에 의해 지역감정이 조장되면 대중 스스로 서로 반목하고 싸우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역대 독재정권에 의해 조장된 고질적인 영호남 지역감정을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여기에다가 보통 정부에 의해 육성되는 프로 스포츠가 결합되면 기가 막힌 효과를 발휘한다. 축구, 야구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는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지역간 감정을 촉발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지역감정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특히 현대사회에는 대중매체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TV를 비롯한 매스미디어에 빠져서 개인 간의 직접적인 접촉은 점차 사라져 간다.
박홍순 / ‘미술관 옆 인문학’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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