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TV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송담(松潭) 2014. 7. 29. 09:09

 

 

TV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맥루한의 < 미디어의 이해 >

 

 

 

 

 TV를 비롯한 매스미디어에 대한 연구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책은 맥루한(Mashall Mcluhan)< 미디어의 이해 >이다. 맥루한은 기술이 발전하면 사회적으로 새로운 환경이 창조된다는 입장이다. 모든 문화는 그 시대에 등장하는 지배적인 미디어 매체의 기술적인 속성에 의해 좌우된다. 각 시대가 의존하고 있는 주요 미디어 속성이 그 시대의 문화, 즉 메시지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그는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주장한다. TV와 같은 미디어가 단순히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디어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 역할을 한다. 주체적인 인간이 대상인 TV를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반대로 TV에 의해 인간의 의식이 지배를 받는 현상, 즉 주객전도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경고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미디어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확장이며 개인의 의식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를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미디어는 인간 두뇌의 특정부분에 마사지를 가하는 역할을 함으로서 특정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갖도록 유도한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정보화 사회가 되어 인터넷이 중요한 정보 전달 기능을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TV이다. 인터넷의 관문 역할을 하는 포털 사이트의 정보 대부분이 TV와 신문 같은 기존의 미디어에서 제공한 것들이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머리모양이나 옷이 단 몇 주일 만에 전국적인 유행을 만들어 낸다. TV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보도를 거의 의심 없이 사실로 인정하곤 한다. 안방을 장악하고 있는 TV드라마는 주부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한다.

 

 스마이드(Dallas Smyth)수용자 상품론을 통해 TV에 대한 좀 더 적극적 비판을 했다. 그는 TV광고의 문제점을 집중 분석하며, “출판사는 책을 독자들에게 판 것이지만, TV방송사는 수용자를 광고주에게 파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어떻게 시청자가 광고주에게 팔리는 상품이 될까?

 

 TV의 주요 수입은 광고이다. 광고료는 철저하게 시청률에 비례하여 매겨진다. 그러므로 방송사는 보다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끊임없는 시청률 경쟁을 한다. 방송사는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을 만든 다음 이를 이용하여 비싼 광고료를 받는다는 의미에서 사실상 시청자가 광고주에게 팔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단순히 시청률이 높은 것으로는 안 된다. 광고주의 입장에서 볼 때, 시청률뿐만 아니라 그 프로그램 수용자들의 경제적 수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급 승용차 광고를 하는데 그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이 주로 서민층이라면 실패한 광고가 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TV방송사들은 소비 능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의 시청자들이 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방영한다. 드라마 주인공들의 직업이 의사, 교수, 디자이너 등의 전문직이거나 사업가인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드라마 배경으로 40평 이상의 집이나, 소품으로 등장하는 비싼 앤틱 가구 역시 중산층의 선호도와 관련이 있다.

 

 맥루한의 주장에 따르면 수용자들은 단지 수동적인 상품이 아니라 그들이 구매하길 원하는 광고주를 위해 일하는 존재들이다. 수용자들은 자신들에게 제공될 소비재와 서비스 시장을 개척한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거나 승용차를 타면 동시에 그 상품을 홍보하는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느 입시학원 교재는 가방에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큰 사이즈로 만들어서 히트를 쳤다. 왜 그랬을까? 가방에 들어갈 수 없으니 들고 다녀야 되는데 그 순간 학생들은 움직이는 광고판이 되어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이들의 지적처럼 TV는 정신적인 풍부함이나 예술적인 감흥보다는 인간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소비를 하는 기계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광고주에게 팔리고 있다는 것은 눈치 채지 못하게, 오히려 스스로 주체가 되어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여가를 능동적으로 즐기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유도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어쩌면 TV를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갖기보다는 무비판적이고 체제 유지적인 성향을 갖도록 집단적으로 훈련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박홍순 / ‘미술관 옆 인문학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