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생'인 젊은 벗에게
그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쏟아지는 가을볕이 서럽다. 창밖의 푸르른 풍경에 그대의 눈빛과 웃음이 스쳐 지난다. 청춘을 무기로 더 패기발발할 수 있는 눈빛과 생기로 가득 찬 활짝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그대가 조금은 주눅 든 눈빛, 조금은 조심스러운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은 그대를 ‘지방대생’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더 모욕적이고 노골적인 이름을 지어 부르기도 한다. 그 이름들은 그대를 ‘패배자’로 낙인찍고 싶어한다. 무능하고 나태하다고 조소한다. 그래서 그대는 점점 더 주눅 들고 조심스러워진다. 고작 스무 살에, 그토록 아름다운 스무 살에.
하지만 그대, 젊은 벗이여!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의 성적표, 수학능력평가 점수표의 석차는 잊어라. 잔인한 서열주의가 매겨놓은 등수와 방향도 없이 강요되던 억지 공부에 대한 기억을 떨쳐버려라. 그대의 시험 성적이 60명 중의 40등이었다고 해서 인생의 등수까지 60명 중에 40등일 수 없다.
1980년대 후반 개봉된 영화의 제목처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는 것은 단순히 말치레만이 아니다. 언젠가 “차라리 행복이 성적순이었으면 좋겠다!”고 부르짖었던 헛똑똑이 인생 선배의 경험적 진실이니 믿어도 좋다. 스무 살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나이다. 새로운 싸움,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험이 비로소 시작된다.
그럼에도 그대는 의심의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비교 당하거나, 억압당하거나, 채찍과 당근으로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을 믿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스스로조차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이미 ‘지방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차별과 불이익을 당해왔기에 취업 시장은 물론 사회가 얼마나 그대를 냉대하는지 잘 알고 있다.
세상은 꿈을 찾으라고 한다.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를 악물고 ‘스펙’을 쌓아도 그대는 번번이 1차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한다. 실력을 보여주려 해도 보여줄 기회마저 없다. 짱짱한 명문대생들도 거듭 고배를 마시는 취업 전쟁터에서 그대를 위해 마련된 자리는 아예 없는 듯하다.
그리하여 그대는 ‘학벌 세탁’이라는 백안시를 감수하면서 편입 시험을 준비하고,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는 공무원 시험에 적성과 상관없이 도전하기도 한다. 그대의 청춘은 이러한 발버둥과 좌절로 점철된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대의 눈빛은 점점 흐려지고 입가의 웃음은 사라진다.
좌절한 그대, 실의에 빠진 그대, 그러나 아무 죄도 없는 그대에 대한 연민과 애정에서, 나는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하겠다. 무한 경쟁의 학벌주의 사회에서 그대가 불리한 첫 패를 가진 것은 분명하다. 평가자들은 때로 학벌을 성실성과 능력의 척도로 간주한다. 그들은 그대를 모르고 그대를 평가하는 기준은 아직까지 눈에 보이는 빈약한 자료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대가 일을 잘 하면 “웬일이지?”하고 의심하고, 그대가 일을 잘 못하면 “그럴 줄 알았지!”라고 안도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여! 23세가 평균 수명이었던 18세기 파리에서라면 그대는 이미 인생의 황혼에 들어서 있겠지만, 평균 수명 90세를 눈앞에 둔 21세기의 한국에서 그대는 앞으로 60여 년을 더 살아야 하고 40여 년을 더 일해야 한다
학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견뎌내야 하는 10년은 그 중의 잠깐일 뿐이다. 10년이 지나면 그대에게 붙어다니던 꼬리표는 사라진다. 그때 그대가 어떻게 평가되는가는 온전히 그대가 10년을 어떻게 견뎌냈는가에 달려 있다.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핸디캡마저 뛰어넘을 만큼 당당하다면, 땀과 눈물은 반드시 보상한다. 아무리 잔인하고 교활한 학벌주의 서열주의라도 더 이상 그대의 삶을 침해할 수 없을 것이다.
허황된 꿈은 독이라지만 섣부른 절망은 삶을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전진시키지 못한다. 단번에 큰 보폭을 내딛을 수 없다면 잰걸음으로 바지런히 따라잡고, 의지할 학연과 연줄이 없다면 오로지 내 등뼈에 의지해 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때로 그대를 외롭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편견과 불평등을 이겨낼 수 있다면, 그대의 외로움이야말로 그대를 진정으로 성숙하고 자유롭게 만드는 힘이 된다. 청춘의 가난과 시련에 너무 일찍 지친 그대에게 니체의 말을 빌려 응원을 전한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대는 ‘지방대생’이기 이전에 무엇도 모욕할 수 없는 고고한 자존의 ‘청춘’이다. 젊은 벗이여, 부디 건투를!
김별아 / 소설가
(2012.9.14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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