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도 친해지면 ‘단맛’이 난다
어느 주말 저녁이었다. 느지막이 저녁식사를 하러 동네의 순댓국집엘 들렀다. 혼자 순댓국을 먹고 있는 나처럼, 어느 나이 지긋한 사내 한 분이 들어와 순댓국을 시켰다. 그 사내에게 순댓국을 나르며 주인 아주머니가 물었다.
“집에 가면 사모님이 맛있게 저녁 지어 놓고 기다릴 텐데 밖에서 식사를 하시네요.” 사내의 대답을 듣고서야 주인과 사내가 초면이라는 것을 알았다. “집이 멀어서요.”
초면에 저토록 일방적인 질문도 가능할 수 있구나. 식당에 혼자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닐 텐데 주인은 굳이 처음 보는 사내에게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혼자 온 사내가 남루해 보이니 괜히 참견이 하고 싶어서였을 거라 여기고 그냥 넘겼다. 혼자 살고, 혼자 행동하고, 혼자 해결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시선을 던지는 것은 이제 시대감각에 뒤처져도 한참 뒤처지는 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혼자 사는 시대가 왔다. 감히 이렇게 말하는 것은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역과 반경이 확연히 넓어져 있다는 데 있다. 혼자인 삶을 혁명처럼 여기는 이도 있으며 혼자 사는 삶을 질적인 측면에서 우위에 두는 이들도 쉽게 본다. 자신의 일을 중심에 두고 사랑하며, 온전히 혼자 할 수 있는 일들과 친구로 지내며 ‘단독자’의 삶을 사는 부류의 사람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은 어떤 외로움의 힘을 통해 삶을 극화(劇化)시키는 특별한 경지의 사람들로도 보인다.
혼자라는 개념은 생활에 밀착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 본질에 관여한다. 결국 ‘혼자’는 사람을 자라게 하여 큰 물살을 힘들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무늬로 받아들일 줄 알게 한다. 하지만 세상은 외로움을 건너는 법을 너무도 모른다. 불안은 멈추지 않으며 그 불안 중심에 외로움의 굵은 심이 박혀 있음에도 외로움의 칼날을 피하려고만 한다.
혼자인 이에게도 분명 행복이 존재한다. 어차피 요리를 하는 것도 혼자, 먹는 것도 혼자, 책을 읽는 것도 혼자이며 생각을 적고 싶어 책상에 앉는 것도 혼자이다. 혼자 공원을 걷는 사람,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 혼자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 그들이 외로움을 채우는 한 방편으로 혼자인 것이 아니라 절실히 선택된 혼자인 삶 안에서 향기로운 뭔가를 품었으면 하는 것이다.
혼자 해야 할 것은 분명 있다. 혼자 해야 하는 것을 혼자 하지 않는 것도 분명 삶에 있어 직무유기이다.
이제 더 이상 혼자라는 건 네거티브 성향이 아니다. 인생의 전략이며 노선이 될 수도 있다. 진정한 쉼이 필요할 때나, 지난 일을 반추할 때는 물론이려니와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운동을 할 때도 혼자의 시간은 빛날 수밖에 없다. 외로움의 날 끝은 사람을 향하게 되어 있고 그 방향을 통해 우리 인생은 부단한 혼자가 아님을 알게도 된다.
얼마 전, 작은 중국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가 생각난다. 아마도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들고 있을 요리사가 주방 안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꽤 경쾌한 중국노래였다. 주방 안을 상상했다. 저 힘으로 저 신명으로 혼자라는 큰 강을 건너고 있을 것이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기름 냄새 진동하는 불가에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는 어떤 식으로든 질식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지쳐 쓰러질 게 뻔할 것이므로. 외로움도 스토리를 부여하면 그 이상의 단맛이 난다. 냉엄하고 엄중한 것일수록 그만큼 친해지면 된다.
하지만 혼자서 잘 사는 삶을 살게 되더라도 주변은 돌아봐야 한다. 고독하되 고독으로 병을 얻어서도 아니 되고 고독으로 단절을 불러와서도 아니 된다.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너무 깊은 곳에 있지 않도록 혼자는 혼자를 잘 보살펴야 한다.
외로움의 명약은 외로움이다. 가장 큰 ‘혼자’로 살 수 있을 때 혼자인 자신에게 성실할 수 있다. 괜찮은 혼자가, 성숙한 혼자가 세상을 든든히 받친다. 일고일고(一孤一高). 한번 외로울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나아진다는 이 말을 새해가 시작되어 여러 각오와 다짐들을 다지는 이즈음에 한번쯤 가슴에 새기는 것은 어떨까.
이병률 | 시인
(2013.1.3 경향신문)
사진출처 : 유형민갤러리
'상처의 치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로가 힘이 될까 (0) | 2013.03.22 |
---|---|
통각역치 (0) | 2013.02.07 |
다음 세대를 위해 오래된 의자를 비워두자 (0) | 2012.10.11 |
'지방대생'인 젊은 벗에게 (0) | 2012.09.14 |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0) | 2012.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