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각역치
꽤 오래전, 무척 힘겨웠을 때가 있었다. 미친 사람처럼 아파하고 슬퍼하던 그때의 나를 지켜봐주고 다독여줬던 선배. 불현 듯 며칠 전 선배가 떠올랐고, 일요일마다 산에 간다던 선배의 말도 함께 떠올라 무작정 따라 나선 것. 그런데 참 이상했다. 분명 나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고, 지금의 내가 몇 년 전의 나보다 덜 아프고 덜 슬픈 것도 아닌데, 지금 나는 미친 사람 노릇은 하고 있지 않았다.
“사람의 적응력이란 게 때론 놀랍지.”
선배는 말했다. 힘든 일이 거듭되면 사람은 고통에도 점점 익숙해진다고. 어쩌면 미친 사람처럼 날뛰어봐야 소용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돼서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친 사람처럼 아픈 티를 낼 수 있는 것도 젊음의 특권이라는 걸, 나이를 통해 알게 돼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선배의 말에서 ‘역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역치, 자극에 대해 반응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 강도.
언젠가 ‘통각 과민증’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특수한 종류의 병적상태에서 통각역치가 현저히 낮아져, 작은 아픔도 큰 고통으로 느껴지는 증상.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 ‘통각 불감증’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역치가 높아져 웬만한 아픔에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증상 말이다. 처음 기타를 배울 때는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아프지만, 계속 치다 보면 굳은살이 박여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는 것처럼, 마음의 고통도 거듭되면 어느새 굳은살이 박인 듯 마음 또한 딱딱하게 통각 불감증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힘든 일을 많이 겪을수록, 고통의 크기가 클수록,
마음의 통각역치가 점점 올라가 웬만한 일에는 무던해지는 것,
통각 불감증.
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에,
성숙해지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아팠으면 좋겠다는 글.
나를 성숙시킬 만큼 큰 아픔은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는 글.
그런데 나는 어느새 또 성숙해지고 만 것일까?
분명 아프고 슬픈 일이 일어났는데도
나는 미친 사람 노릇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선배를 따라 산에 오르고 싶었고,
산에 오르며 일행들과 나누는 대화가 즐거웠고.
정상에서 부는 바람 맛에 한참을 멍......
그저 그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도리어, 조금 씁쓸했을 뿐.
강세형 /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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