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중독치료 첫 단계-
현대인이 가장 쉽게 중독되고 널리 중독되어 있는 대상은 알코올인 것 같다. 미국에는 ‘AA(Alcoholic Anonymous)'라 약칭되는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자조 모임이 있다. 그 모임에 대해 존 브래드쇼의 《가족》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단주 모임 창시자였던 빌과 밥 박사는 알코올 중독의 궁극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영적인 파산’이라고 믿었다. 모든 중독은 영적으로 뒤틀린 상태이고 작은 우상 숭배이다.”
나는 저 문장을 읽으면서 기독교의 ‘우상숭배’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우상 숭배란 사람들이 저마다 불안을 달래고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매달리는 ‘자동 강박 반복 추구’의 대상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술이나 담배뿐 아니라 섹스, 스타일, 스피드, 스캔들 등 현대인들이 내면의 불안과 접촉하지 않기 위해 매달리는 외부의 모든 대상들이 우상으로 보인다. 세속적 권력이나 명예, 창조적 표현 행위 등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상 숭배는 욕동에 이끌려 다니는 일이고, 그것은 곧잘 중독으로 치닫는다.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는 중독을 치료하는 12단계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그 첫 번째는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는 단계이다.
정신분석학은 처음부터 종교에 관해 연구했다. 프로이트는 과학적 태도를 지닌 무신론자였다. 그는 종교를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강박 신경증, 불멸의 환상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한 장치, 오이디푸스 투쟁의 연장 등으로 보았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보는 마르크스주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프로이트학파 현대 정신분석학자들은 종교에 대해 다른 통찰을 내놓고 있다. 자아 심리학자 하인츠 하트만은 종교가 신경증적 유아기 욕망 상태의 자아를 긍정적이고 적응적인 자아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종교가 인간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기능을 찾아내어 그것을 정신 치료에 사용하고자 노력한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끝나는 지점에서 융의 학문이 필요했듯이, 융의 정신분석학은 자연스럽게 종교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융에게 있어서 정신분석의 목표는 개인의 신경증을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 안에 비밀스럽게 감추어져 있는 ‘신성한 것(The Sacred)’들을 재발견해 내는 데 있다. 이러한 목표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융의 심리학은 하나의 변형된 신학이 되었다.”
김형경 / ‘만가지 행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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