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오늘도 좌절 금지

송담(松潭) 2011. 11. 22. 16:13

 

오늘도 좌절 금지

 

 

 

 “좌절 금지, 우는 건 반칙”, 열 개도 넘는 직업을 거치며 부산스럽게 살아가는 동안 세상이 나에게 들려준 문구다.

 내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책으로 나오고, 드라마로 만들어진 건 사고이거나 우연이거나 멍에였다. 등단한 경력이나 이렇다 할 학력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쏟아져 들어오는 원고 청탁이나 연재 제의를 해낼 만한 역량이 준비되지 않았다. 나는 얼마 안 가 세상에서 잠식되었고,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알맹이 없는 작가로 굳어졌다. 대학생 때나 책을 쓰기 전처럼 아르바이트하는 생활로 돌아가야 했다.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될까. 슈퍼에서 매대를 정리하고 편의점에서 야간 일을 하노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쏟아졌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모두 내가 태만한 결과였다.

 

 밤에 편의점으로 먹을거리를 사러 들어오는 손님 중에 택시 운전이나 대리 운전하는 사람이 많았다. 계산할 때 돈을 내미는 그들 손을 여러 차례 보다, 문득 세상엔 손가락이 서너 개 없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몇 개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빵과 우유를 허겁지겁 먹고 손님을 태우러 뛰어가는 아버지들을 보며, 겨우 요만한 일에 우는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한밤중에 일당을 벌려고 달려가는 그들은 늘 피곤해 보였지만 스스로로의 힘으로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중이었다. 빨간 핏줄이 불거진 내 눈처럼 그들의 눈에도 피로가 가득했다. 그러나 어린것들의 아버지인 그이들이 빵을 씹어 삼키고 도로로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좌절 금지를 다시 기억해 냈다.

 

 아르바이트하는 동안 책을 읽고, 글 쓰는 법을 처음부터 익혔다. 아침에 퇴근하면 근처 대학에 가서 청강했다. 소설 쓰기 강좌를 열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공감했다. 그리고 1인 출판사를 만들어 나의 가장 큰 좌절이자 희망이었던 책, 옥탑방 고양이를 다시 써서 출판했다. 소리 내 웃고,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렸다. 등단 못했으면 어때, 쓰고 싶은 거 쓰면 되지. 준비가 덜됐으면 어때, 지금부터 준비하면 되지. 일류가 못되면 어때, 난 이류나 삼류는 되는 걸. 좌절하고 우는 것보다 근거 없어도 자신감에 찬 게 멋지잖아. 그래서 오늘도 좌절 금지, 우는 건 반칙.

 

김유리 / 옥탑방 고양이저자

(‘좋은생각’ 2011.12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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