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내 삶의 짐과 힘

송담(松潭) 2011. 10. 23. 17:36

 

내 삶의 짐과 힘

 

 

 가만히 곱씹어보면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고스란히 나를 짓누르고 억압하는 ‘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상처와 고통과 슬픔과 걱정과 책임일망정 때때로 그 짐을 감당하기 위해 앙버티는 것이 삶의 근거가 되었다. 그때 짐은 ‘힘’이었다. 상처도 힘, 고통도 힘. 슬픔과 불안까지 힘이었다. 니체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그것들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했기에 나는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자음 하나로 그 뜻이 상반되는 짐과 힘, 그런데 짐과 힘을 가름하는 것이 단순히 자음뿐일까? 무엇이 같은 상황과 감정을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짐으로, 때로는 삶을 곧추세우는 힘으로 느끼게 하는 것일까?

 

 나는 힘과 짐, 혹은 짐과 힘이 나뉘는 지점에 ‘자기 연민’과 ‘자기애’가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고통과 시련이 곧 도전의 기회이자 스스로에 대한 시험대가 된다. 그는 자신에게 집중하여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판단하고 선택한다. 그 판단과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다면 상처와 고통과 슬픔과 불안조차도 삶을 진정으로 성숙하게 하는 힘이 된다. 그러하기에 그는 쉽게 비탄에 빠지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것이 행여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의 결과를 낳는다고 할지라도, 그는 자신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힘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를 사랑하기보다는 가련하게 여기며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에게는 모든 고통과 시련이 견딜 수 없이 무거운 짐이 된다. 자기 연민의 두 가지 양상인 ‘자기 비하’와 ‘과대평가’는 기실 동전의 양면이다. ‘과대한 자기’를 가진 사람은 상대의 모든 것을 감싸주고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며 내 짐 남의 짐 가리지 않고 떠안는다. ‘내가 더 약자고 더 고통받는다’면서 스스로 비하하는 사람은 과도한 피해의식을 짊어지고 허덕인다.

 “너무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잘못은 없다. 아니.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믿지 못하는 잘못의 결과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나는 자기 연민에 빠진 들짐승을 본 적이 없다.

얼어붙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새조차도

자기 존재를 동정하지 않으리라.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는 시 <자기 연민(Self Pity)>에서 이렇게 읊었다. 들짐승들은 보금자리 이동을 하는 중에도 단봇짐을 꾸리지 않는다. 새들은 등짐을 지고 날지 않는다. 맹수들은 서로 부축이지 않는다. 사람 역시 궁극적으로는 혼자다. 짐이든 힘이든, 그것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다. 나를 아끼고 존중하되, 불쌍히 여기지 않기로 한다. 보듬어 다독이되, 딱하고 가엾게 여기며 쩔쩔매지 않기로 한다. 감상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는 깊이 이해하여 진심으로 사랑하기로 한다. 그럴 때 ‘짐’은 비로소 ‘힘’이 된다.

 

김별아 / ‘이 또한 지나가리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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