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절망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다

송담(松潭) 2011. 8. 20. 10:25

 

절망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다



 결코 기대하거나 생각지 않아도 살다보면 어쩌다 ‘바닥’에 닿는 순간이 있다. 아니, 기어코 피하고 싶어 필사적으로 도망쳤는데도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내팽개쳐지고야 마는 때가 있다. 모든 것을 잃은 듯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희망할 수 없을 듯 암담한 상태, 바닥이라는 말에서는 컴컴한 어둠과 메케한 곰팡이 냄새가 느껴진다. 그것이 바로 상실감과 절망의 독한 향취일 것이다.


 바닥이라고 불리는 지점은 자존감이 극도로 낮아진 상태를 말한다. 스스로의 가치를 긍정하지 못하고 함부로 방치하거나 내던지는 것이다. 어디가 바닥인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무엇 때문에 그 바닥을 경험하게 되는가도 각각의 사연과 사정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바닥에 머무르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제한된다는 사실이다. 썩은 고기를 씹듯 질근질근 고통을 곱씹으며 계속적으로 나 자신을 파괴하는 일, 혹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과 상황을 들춰내어 비난하고 저주하는 일, 아니면 맞닥뜨리기 버거운 고통으로부터 도망쳐 나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줄 만한 사람을 찾아내 매달리고 의존하는 일....... 하지만 그 모두가 일시적인 위로나 도피는 될지언정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같은 바닥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가에 따라 누군가는 바닥을 짚고 일어서며 누군가는 그 바닥마저 긁어 땅굴을 판다.

 

 어쩌면 잔인하고 냉정한 진실이지만 고통에 직면하여 가장 빨리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고통의 본질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낮은 자존감의 밑바탕에 자리한 자신에 대한 회의감, 즉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대답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진지하고 집요하게 물어보나니,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갈등하고 방황했던 많은 시간은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그토록 끈질겼던 죽음에 대한 친화력도 뜨겁게 살고 싶다는 열망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니 바닥을 친 것도 모자라 땅굴을 파 숨어들려는 나 자신을 그대로 버려둘 수 없었다. 스스로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자존감이 어둡고 습한 바닥에서 내 팔목을 잡아 일으켰다. 비록 삶의 어떤 부분에 실패했을지라도 그것이 삶 전체를 패배라고 말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고려의 거승 보조국사 지눌의 법어가 내 굽은 등을 죽비처럼 내리쳤다.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

(인지이도자, 인지이기 -  因地而倒者, 因地而起)

 

 

김별아 / ‘이 또한 지나가리라!’중에서


* 위 글 제목 ‘절망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다’는 독자가 임의로 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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