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의 예의
어떻게 저 무지막지한 재앙에
입 벌려빈 소리를 낸단 말인가
어떻게 저 눈앞 캄캄한 파국에
입 다물고 고개 돌린단 말인가
이도 저도 아닌 속수무책으로 실시간의 화면을 본다
몇 천일지
몇 만일지 모를 일상의 착한 목숨들
이제 살아오지 못한다
어머니도
아기도
할아버지도 휩쓸려갔다
아버지도
누나도 친구들도
어느 시궁창 더미에 파묻혔다
그리도 알뜰한 당신들의 집
다 떠내려갔다
배들이 뭍으로 와 뒤집혔고
차들이 장난감으로 떠내려갔다 우유도 물도 없다
인간의 안락이란 얼마나 불운인가
인간의 문명이란 얼마나 무명인가
인간의 장소란 얼마나 허망한가
저 탕산 저 인도네시아
저 아이티
저 뉴질랜드
오늘 다시 일본의 사변에서
인류는 인류의 불행으로 자신을 깨닫는다
그러나 일본은 새삼 아름답다
결코 이 불행의 극한에 침몰하지 않고
범죄도
사재기도혼란도 없이
너를 나로
나를 너로 하여
이 극한을 견디어내고 기어이 이겨낸다
오늘의 일본은
다시 내일의 일본이다
내 이웃 일본의 고통이여 고통 그 다음이여
오늘의 일본으로
이후의 일본 반드시 세워지이다
<시인 고은>
일본이여 울지 말라
서기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멸망한 폼페이는 그 당시 거의 완벽한 도시였다. 이미 7백 년의 역사를 기록한 유서 깊은 도시였으며, 아우구스투스 시절부터 시행한 대규모의 도시 재개발로 인해 로마에 인접한 최고의 휴양도시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만 명의 인구는 도시로서 모든 요소와 조직을 갖추기에 적절한 크기였다.
포럼의 주변에는 장엄한 신전들과 공회당들이 적절한 간격으로 들어서 도시의 위엄을 과시하였고, 여기서 뻗은 도로들은 완벽하게 도시의 모든 곳을 소통시켜 주고 있었다. 도로의 표면은 대리석 돌과 타일 장식으로 화려하게 마감되어 빛났으며, 중요한 길은 마차로와 보도가 분리되어 조직되었다.
도시는 공공업무지구와 주거지구 위락지구 등으로 나뉘었고, 우물을 중심으로 모인 주거지역에는 크고 작은 집들이 섞여서 들어섰다. 집 안은 크건 작건, 아름다운 프레스코의 그림이나 모자이크타일 장식의 바닥으로 서로간에 예술적 품위를 겨루었다.
곡선으로 휘어져 후미진 거리에는 어김없이 목로주점이 있었고, 그 건너편 골목 안의 집은 하룻밤 정을 나누는 거리의 여인들이 사는 집이었다. 계곡과 이웃해서는 완벽한 형태의 노천극장에서 매일 희극이 상연되었고, 언덕너머의 경마장에서는 늘 함성이 들렸다. 놀랍게도, 도시에는 수백 명을 동시에 목욕시킬 수 있는 대중탕이 네 개나 있었다.
로마에서 휴양 차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도시는 늘 분주했고, 이로 인해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재미와 활력, 모험과 스릴이 넘쳤다. 그야말로 교역의 요충지였고 역사문화도시였으며, 휴양과 위락의 도시였다. 자연히 문화와 예술이 만발하고, 자유와 평화가 도시에 넘쳐났다. 도시의 북쪽에 위치한 베수비오산은 마치 이 모든 번영을 영원히 지켜줄 듯 우뚝 솟아있었으니, 폼페이 시민들은 이 늠름한 산에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있었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믿었던 산이, 그러나 한 순간에 폭발하여 모든 것을 앗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불의 신을 위한 축제를 즐긴 다음날 베수비오 화산은 불덩이를 폭발해 내었다. 250도나 되는 열기가 도시를 휘감았고, 화산재는 이십오 미터 두께로 도시 전역을 덮었다. 더러는 목욕 중 발가벗은 채로, 더러는 술집과 거리에서, 더러는 공연장에서, 혹은 신전에서, 일상을 평화롭게 보내던 모든 시민들의 일상적 삶의 순간을 그대로 영원히 멈추게 하고만 것이었다.
나는 십 수년 전, 이 폐허의 도시를 가서 답사하며 그 원형을 상상하고 나서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내가 믿는 이상적 도시의 모든 요소가 이미 이천 년 전의 이 도시에 다 있었던 것이었다. 너무도 완벽한 도시였다. 선과 악, 행과 불행을 선택할 수 있는 도시였고, 빈자와 부자, 낮은 자와 높은 자 등 신분과 계급이 공존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도시였다.
공공은 철저히 도시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했고, 기반시설은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기에 완벽했다.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정도로 인간의 자존적 지위를 과시하는 도시였을 수 있다. 그래서 멸망했을까. 결국은 자연이 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일본이 당하는 비극을 보며 이 폼페이가 생각났다. 어쩌면 폼페이가 비교될 수 없는 더 큰 참상일지도 모른다. 한 도시가 아니라 여러 도시이며, 이만 명의 숫자를 훨씬 뛰어넘는데도, 땅으로부터 바다로부터 하늘로부터 비롯된 미증유의 참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대세계에서 가장 진보했으며, 놀라운 자율국가 일본의 사회에서 일어난 일 아닌가.
자연은 인간이 만든 사회나 문명보다 더 큰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숱한 자연의 혹독함 앞에서 겸손을 배우며 우리가 늘 진보해온 것도 사실이다. 역사 속 우리의 삶터가 수없이 자연의 힘에 짓이겨 졌어도, 우리의 삶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은 그 어떤 경우에도 꺾지 못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도 인류는 늘 진보하였고, 멸망된 폼페이보다 더 자랑스러운 도시들을 세우며 결국 우리의 지경을 넓혀왔다. 그게 우리 인간만이 갖는 존엄이었다.
일본의 이 엄청난 비극에도 우리 인류의 아름다운 삶이 지속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더욱 공고히 하며 우리의 존엄을 더욱 빛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일본이여 울지 말라. 인간의 존엄으로 딛고 일어서, 역사 속에 빛으로 오라.
승효상 / 건축가 ·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2011.3.17. 광주일보)
알 수 없는 신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그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2004년 12월 서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 재앙 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헤럴드’에 실린 칼럼이다. 필자는 “20만명이 넘게 죽은 참사를 보며 아무리 믿음이 강한 신자라도 시험에 들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나님이 없다는 내 생각이 옳기를 바란다.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보기에 신은 죄인이며, 나는 그와 아무런 관계도 맺고 싶지 않다.”
지진해일 같은 재앙을 만나면 인간은 신을 떠올리게 된다. “자연재해 앞에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자연 앞에 얼마나 겸허해야 하는지.” 이번 일본 대지진에 대해 작가 공지영씨가 트위터에 올린 소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참사에 고은 시인은 “인간의 문명이란 얼마나 무명인가/ 인간의 장소란 얼마나 허망한가/ …인류는 인류의 불행으로 자신을 깨닫는다”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불가항력의 재난 앞에서 인간은 작아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인간이 작아질수록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는 더 크게 다가오게 마련이다. 이해 못할 비극이 닥치면 인간은 이렇게 묻게 된다. “신은 정녕 존재하는가.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가능한가.”
서남아시아 지진해일 이후 한 사이트에서 온라인 투표로 물었다. “하나님은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에 관여할까?” 그 결과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하나님은 계시지만 재앙과는 관련이 없다”고 답했다. “신은 믿지만 행하는 일은 다 믿기 힘들다”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유대인 랍비 해롤드 쿠시너는 <착한 사람에게 왜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책(1981)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고한 사람들을 아무 이유없이 희생시키는 지진을 하나님의 행위라고 믿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의 성경은 자연재해까지도 하나님이 다스린다고 분명히 적고 있다. 하나님은 빛과 더불어 어둠과 환난도 창조했으며(이사야 45:7),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온다.”(예레미야 애가 3:38)
인간이 신을 이해할 수 없듯이, 자연재해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알 수 없다고 믿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자연재해를 다스리려는 노력은 문명을 낳았고, 고통을 다스리려는 기도는 종교를 낳았다. 화를 내리는 신에게 화를 낼 것인가, 기도할 것인가. 그 선택은 인간에게 달려 있다.
김태관 / 논설위원
(2011.3.17.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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