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선택
뉴욕 메디슨 공원에서 잠을 청하는 날이 많은 소피는 날이 추워지자 교도소가 있는 섬으로의 도피를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레스토랑에서 무전취식을 시도해 보지만 입구에서부터 쫓겨나고 배불리 먹고 나서 경찰을 부르라고 해도 종업원으로부터 실컷 얻어맞기만 한다.
경찰이 보는 앞에서 여자를 희롱해봐도, 상대방은 이를 반기는 거리의 여자이다. 고심 끝에 우산을 훔쳐보지만, 자신도 뒤가 구린 사내는 우산을 우연히 주웠다고 사과할 뿐이다. (오헨리 단편소설 ‘경관과 찬송가’ 중)
재판을 하다보면 가끔 또 다른 ‘소피’를 만나게 된다. 교도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느라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재범에 이르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범죄와 그에 대한 처벌이라는 악순환의 굴레에 내맡긴 경우도 본다.
그들은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르게 살아보려 했지만 어쩌다보니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고 반성의 글을 적어내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이러저러한 읍소인 경우가 많지만, 그 말 속에 진심 한 자락이 묻어나기도 한다. 미망(迷妄)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중생이라지만 얄궂은 운명의 탓으로 돌리는데만 그칠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서 소피는 공원으로 발길을 돌리다 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에 문득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에 당당히 맞서 새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에게 체포되어 그토록 원하던 섬에 가게 된다. 그 자신이 수감생활을 경험했던 작가는 소설에서 인생의 아이러니를 담아보려 했으리라. 분명 현실 속의 또다른 ‘소피’들에게도 잠깐씩이라도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회심(回心)의 순간이 찾아왔을 터이다.
그랬다가 운명의 무게에 눌려, 힘겹게 갈등해 보다가 아니면 그런 시도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또다시 자신의 운명과 손쉽게 타협해 버린 것은 아닌지. 물론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실업, 경제불안, 양극화, 신용불량, 가정해체와 같은 문제에 직면한 이들이, 더구나 전과자라는 멍에까지 짊어지고 있다면, 현명하고도 용기있게 대처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터이다. 함께 살아가야 할 이들이 애써 붙잡고 있는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리지 않도록, 우리의 관심과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소피’들의 올바른 선택을 응원하고 도울 일이다.
이재석 /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
(2011.8.22. 광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