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자기 성찰 없는 ‘뱉어내기’

송담(松潭) 2011. 11. 23. 10:19

 

자기 성찰 없는 뱉어내기

 

 

 

 포도를 먹으면 껍질과 씨를 확 뱉어낸다. 먹을 것이 아니거나 먹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먹고 뱉어내는 행위는 우리가 살면서 늘 하는 짓이다.

 

 사람의 성격도 결국 간단히 말하면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이 무엇이며, 밖으로 뱉어낸 것이 무엇인가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무엇을 밖으로 뱉어내는가? 내가 마음에 가지고 있는 내 것이지만, 내 것이라고 인정하기 거북한 것을 뱉어낸다. 마치 뱉어내면 없어지는 것처럼 여기면서.

 

 이를 정신분석학에서는 투사(投射)’라고 한다. 투사되는 것은 두 가지인데, 마음에 저장된 나에 대한 이미지 중에서 받아들이기 싫은 것들과 어머니·아버지와 같은 대상들에 대한 이미지 중에서 버리고 싶은 것들이다.

 

 투사란 내 마음의 평정을 지켜내기 위한 방어기제로 일종의 심리적 활쏘기다. 그러려면 활을 맞는 과녁, 즉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 상대는 개인, 사회, 국가 등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저 놈은 정말 거짓말쟁이야” “우리 사회는 연줄이 없으면 살 수 없어” “나라가 엉망이야” “(특정 국가에 대해) 나는 그 나라가 싫어라고 이야기할 때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 행위에는 투사라고 하는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해석을 하면 나는 내가 거짓말쟁이인 것이 싫어” “나도 연줄이 있으면 훨씬 더 출세할 수 있는데” “내 생활은 엉망이야” “나도 그 나라에 유학 가서 공부했다면 지금 더 잘살 수 있는데가 속에 꼭꼭 숨어있는 것이다. 우리 속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에도 투사가 숨어있다. 투사가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모두가 남의 탓이다.

 

 투사보다 한 수 위의 방어기제는 투사적 동일화(同一化)’.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목표 대상에게 뱉어내고, 그 대상 자신이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믿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내가 잔머리 굴리는 나가 싫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너는 정말 잔머리를 잘 굴린다!”라고 던져버리고, 그 대상이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정말 잔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인가라고 자신에 대해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방어기제이니 내가 싫어하는 나의 일부를 밖으로 내보내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것이다.

싫은 것을 집 밖으로 내보내고, 평소 싫어하는 이웃집에 같이 살도록 정해주니 돌 하나로 참새 두 마리를 잡는 효과가 있다. 내 마음에 안 들어서 버리려는 것으로 남을 해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겉으로 보기에 사회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다. 깊게 보면 사람과 사람의 무의식들끼리 부딪치며 하루 또 하루를 보낸다. 그러니 사회는 복잡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투사의 활쏘기는 서로 간에 활발하다.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모르는 사이에 상황은 흘러간다.

 

 이렇게 애매하고 복잡한 세상을 단순한 진리로 정리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이 정신분석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자기 성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신분석을 통해 효과를 보기 어렵다. 모든 것이 남의 탓이라면 자신의 탓을 찾아내 고치려는 노력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어기제는 일시적으로 마음을 평안하게 돕지만 투사와 같은 특정 방어기제가 성격의 일부로 굳어지면 성격이 독특한 사람이 돼 버린다.

 

투사란 미성숙한 성격의 사람이 즐겨 쓰는 대표급 병기다. 투사가 늘어나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로 가기 어렵다. 그러니 이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을 모아봐야 의견이 다른 진영과 집단적 투사가 벌어지기 마련이니 더 어려워질 뿐이다. “내 탓이오가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적 화두가 되어 내적 성찰이 습관화되기 전에는 다 어렵다. 누가 누구를 고소했다고 했던가. 투사가 일상화된 사회는 코미디가 국가 성장산업이 될 수 있는 좋은 토양이다.

 

 

정도언 / 서울대교수. 정신분석학

(2011.11.23.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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