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내 눈을 믿을 수 있을까

송담(松潭) 2011. 9. 14. 10:08

 

 

내 눈을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나를 보는 눈은 어려서 키워진다.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대하는 방식을 마음 안에 나 자신에 대한 이미지들로 저장한다. 이를 정신분석학에서는 자기 표상이라고 한다. 자기 표상은 복합적이다. 사람은 내면의 자기 표상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며 남들을 대한다. 예를 들면, 순탄한 삶을 순수하게 살아 온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에게 남들은 누구인가? 내가 남들을 파악하는 안목 역시 어려서부터 키워진다. 남들과 부딪치면서 생겨난 이미지들이 마음에 들어와 머물고 삶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한다. 이를 대상 표상이라고 한다. 이 역시 다면적이다. 내가 남들을 대하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데는 내 마음 안의 대상 표상들도 참여한다. 예를 들면, 늘 남들에게 이용당하기만 했던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의심부터 한다.

 

 ‘대인 관계는 표피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이고, 심층심리학에서는 대상 관계라고 한다. 대인 관계 측면에서는 을 만나,

예를 들면 논쟁을 하는 것이지만, 대상 관계의 틀에서 보면 의 마음 안에 있는 자기 표상이 의 마음 안에 있는 대상 표상과 한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흔히 삶이란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의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이 나온다.

 

 요즈음 이런저런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신문 지상에서 자주 읽는다. 때가 오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과연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잘 가려서, 자신 있게 선택할 수 있을까? 심층 심리학적 견해로 보면 심사숙고한 자발적 결정이라는 것도 자발적이 아닌, 마음 안의 자기 표상과 대상 표상에 따른 것이니 늘 그렇지만 걱정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확신하는 바와 달리, 내가 나를 보는 눈은 정확하지 않다. 나 스스로 양심적이고, 국가관이 뚜렷하며, 훌륭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에 대해 받아들일 것만 받아들이고 마땅치 않은 것은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 마음 안의 자기 표상은 불완전하고 경험의 폭과 깊이에 따라 변화를 거듭한다.

 

 내가 남들을 보는 눈도 생각보다 엉터리다. 내가 누구를 좋아할 때는 그 사람의 실체적 진실 (그런 것이 파악 가능하다면), 그 사람이 스스로 대중적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애쓴 결과, 그리고 내가 그 사람에게 투사한 기대와 환상이 합쳐져서 좋아하거나 열광하게 된다.

 

 내가 누구를 싫어하거나 미워할 때도 그 사람의 실체적 진실, 그 사람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흡수한 결과, 그리고 내가 그 사람에게 투사해 버린 나 자신의 부정적인 모습이 합쳐져서 싫어하거나 증오하게 된다.

 

 마음의 흐름이 이러하니 민주주의가 현재로서는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최선의 제도이지만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투쟁의 이면에는 누구의 마음 안에서도 자기 표상과 대상 표상이 고약하게 움직이면서 크게 영향을 준다. 그러니 누구를 미친 듯이 좋아하거나, 다른 누구를 죽어라고 미워하는 일이 알고 보면 너무나 허망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치와 이념의 세계에서 늘 변절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 세계의 척도로는 변절이지만 그 사람 마음의 입장에서는 자기 표상과 대상 표상의 당연한 변화가 왔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들을 맹렬하게 비난한다. 아마도 자신들도 능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알기 때문에.

 

정도언 / 서울대 교수, 정신분석

(2011. 9. 14.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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